Eternal Youngman Mongyang
Revolutionaries of freedom and independence
National leaders ahead of the times
신문사 사장, 체육회 회장.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으로 위세를 부릴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런자리에 있는 사람이 직접 옷을 벗고 모델이 되었다는것을 상상해보세요. 그것도 1934년에. 몽양 여운형은 당시 조선의 3대 일간지 중 하나였던 조선중앙일보 사장이었고, 조선체육회장이었습니다.
평소 스포츠를 통해 청년들의 전투정신을 고취, 독립운동을 도모하려했던 몽양은 1934년 출간된 <현대철봉운동법>에 철봉운동으로 단련된 자신의 맨 몸을 공개했습니다. 당시 49세, '여.운.형' 이름 석자대면 모르는 사람이 없던 시절. 몽양 여운형은 자신의 체통보다는 식민지 조선 청년들의 튼튼한 몸과 마음이 더욱 소중했던 것입니다.
"장래의 조선은 청년의 조선이다"며 청년들의 기세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던 몽양은 권세 있는 사람, 돈 있는 사람은 두렵지 않아도 청년들만 보면 두려웠다고 합니다. 혹시 자신이 나쁜 본이라도 보일까 조심했던것이지요.
몽양은 해방 이후 환갑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을 다섯차례나 방문했었습니다. 당시 조선의 지도자 중 남북을 오고가면서 남북통일을 위해 노력을 기울인 지도자는 몽양이 유일했습니다. 그 때 주변사람들은 "저쪽에서 먼저 찾아오면 몰라도 이쪽에서 먼저 찾아갈 것까지는 없지 않습니까"라며 북한 방문을 만류했다고 합니다. 당시 북한의 지도자는 몽양보다 26살이나 어린 김일성이었습니다. 몽양은 이렇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나라의 통일 독립을 위해 선후배나 체면을 가릴 때인가. 오직 최선을 다해 볼 따름이지."
강대국들에 의해 남북으로 나뉘어진 한반도와 좌우로 분열된 민족을 하나로 합치기 위해 노력했던 몽양 여운형은 두 달에 한 번꼴로 테러를 당했습니다. 그래도 몽양은 좌우합작과 남북통일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청년은 진리와 정의를 위해서는 목숨도 아끼지 않는 불가슴을 안고 있다."고 말했던 몽양 여운형. 그가 바로 그런 '청년'이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