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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제목 나의 아버지 여운형
작성자 몽양살림이
작성일자 2020-04-14
조회수 2449





저자 - 여연구 / 출판사 - 김영사 / 2001-12-7 출간
 

 

책소개

북한 전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여연구가 말하는 아버지 여운형의 삶과 사상, 알려지지 않는 역사. 조선독립을 위해 스탈린, 모택동, 일본천황과 담판한 국제적 감각의 정치지도자 여운형. 그가 독립운동에 발벗고 나섰던 초기부터 풍파 사나운 이국 땅에서 갖은 고초를 다 겪으면서도 어떻게 나라의 독립을 위한 투쟁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구김새없이 수행해 나갈 수 있었는지를 담담하게 서술했다.
 

출판사 서평

북한 고위관료를 지낸 딸 여연구가 이야기하는 아버지 여운형의 삶과 사상
젊은 세대에게 여운형이란 이름은 그리 익숙하지 않다. 한국 역사상 가장 혼란한 시기라 할 수 있는 해방정국, 이념 대립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심하고 나 아니면 적이라는 생각이 팽배해 있을 시기에 남북합작과 좌우합작을 부르짖던 여운형이라는 인물은 줏대 있는 지도자라는 칭송보다는 기회주의자라는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올바른 일, 민족을 위한 합당한 일을 하고서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비운의 지도자가 바로 몽양 여운형이다.

《나의 아버지 여운형》은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을 지낸 딸 여연구가 쓴 수기와 여운형에 관한 여러 자료들을 함께 담은 책이다. 2000년 10월 여원구(여운형의 셋째 딸, 여원구 부의장의 동생으로 몽양의 자녀로는 유일한 생존 인물이다) 최고인민회의 부의장과의 인터뷰와 김일성·로마넨코와의 대담기록 등이 실려 있어 객관성과 사실성을 더하고 있다. 그만큼 사실적이고 생생하게 아버지 여운형의 삶과 사상을 담아내고 있다. 또한 부녀간의 애틋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부드러운 문장으로 쓰여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민족의 화해와 협력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지금, 해방직후 혼란한 정치상황에서 좌우를 넘나들면서, 남북을 오르내리면서, 미국과 소련을 함께 상대하면서 민족의 현실적 활로를 찾 기 위해 헌신한 몽양 여운형의 삶과 사상은 21세기 우리가 나아갈 바를 제시해 주는 이정표와도 같다.

일본천황과의 만남 등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생생한 기록
《나의 아버지 여운형》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몽양의 인간적 진면목을 보여주는 역사적 기록인 동시에 파란만장한 20세기 한국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실록이기도 하다. 여운형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선언'을 번역한 최초의 한국인이었다. 또 조선중앙일보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의 일장기 말소사건을 주도한 사람이 여운형이라는 사실(80쪽)도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였다.

가장 큰 역사적 사실의 발견이라 할 것은 무엇보다 일본천황과의 만남에 관한 내용이다. 여운형은 1940년 조카인 여경구와 함께 일본에 건너가 직접 일본천황을 만났으며 자칫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조선의 독립을 역설하였다(112쪽). 여러 오해가 생길 것을 염려한 여운형이 사실을 밝히지 않아 소문으로만 떠돌던 것이 60년 만에야 제대로 알려진 것이다.

위기가 있을 때마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을 만나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논의한 부분들도 그동안의 한국 사회상황에서는 이야기하기 힘든 내용들이었다. 그 밖에 박헌영이나 김구 등 시대를 대표하던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함께 실려 있다. 추앙받는 지도자로만 알고 있던 사람들이지만 그들 역시 혼란한 정국 속에서 그릇된 판단이나 행동으로 인민들을 더욱 혼란하게 만들었다는 비판도 담겨 있다. 간혹 여운형을 부각시키기 위해 부러 깎아내린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무조건 옳은 길로만 나가던 사람들이라는 일종의 환상을 버리고 좀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그들의 행적과 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준다고 볼 수 있다.

단순히 한 인물에 대한 기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기록이 빠질 수 없다는 것은 어느 평전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당 시대를 살았던, 그리고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여운형을 지켜본 저자의 목소리로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생생한 느낌이 들게 해 준다.

일본천황마저 경의를 표한 지도자, 인간 여운형의 진면목
여운형은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나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닌 진보적 민주주의자로 규정했다. 이는 여운형의 사상적 이념적 모호성과 불명확성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당시의 민족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특정 이념보다는 구체적인 실천이 중요했음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반대파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여운형의 모습은 비판의 대상으로 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공산주의자에서 친미주의자, 기회주의자까지 여운형에 대한 양립할 수 없는 평가들은 미소라는 강대국의 영향력 속에서 좌우익의 이데올로기 전장이 되어버린 당시 상황을 잘 말해주고 있다.

여운형은 당시 보기 드문 세계적인 정치가였다. 그는 세계 곳곳을 다니며 민족의 활로를 찾기 위해 고심하고 국제적 감각을 키웠다. 또 손문과 스탈린, 로마넨코, 미국의 하지 중장 심지어 적국인 일본의 천황까지 만나 조선의 독립과 통일을 당당하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여운형은 언론인으로, 또 청년들을 사로잡던 당대의 웅변가로 합법적인 공간에서 활동하며 끝까지 변절하지 않은 양심 있는 지도자로 청년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 그를 기회주의자니 친일브로커니 하며 매도하는 말들은 모두 엄혹한 일제 식민통치 하에서 합법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데 의문을 제기하며 나온 발언들이다. 이러한 여운형의 활동은 그가 어느 한 사상이나 정견에 치우치지 않고 중도를 걸으며 오직 민족을 위한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실천에 옮겼음을 잘 보여준다.

또 몽양은 뛰어난 판단력과 혜안으로 남들보다 앞서 다음의 일을 준비하였다. 세계 정세를 신속히 파악하여 해방되기 1년 전부터 독립 이후의 일을 대비하여 조선건국동맹을 결성하고 지하 활동을 계속하였다. 또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에 반대하던 많은 사람들과 달리 여운형은 찬탁을 주장했는데, 이 또한 눈앞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조선이 자주적 독립국가가 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일이라 판단한 것이다.

몽양 여운형은 체 게바라, 등소평 등 격동의 20세기를 함께 살았던 세계적인 정치가들과 비교해 볼 때도 뒤떨어지지 않는 실천가였으며, 특히 뛰어난 국제적 감각과 함께 민족화합의 '중도노선'을 걸었던 몽양의 인생 역정은 21세기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에게 사표가 되기가 충분하다. 진정한 지도자가 부재한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나의 아버지 여운형》은 지도자란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는가, 민족을 위한 올바른 길은 어떤 것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