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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3년 66주기 추모식 추도사 4 -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작성자 몽양살림이
작성일자 2020-04-14

夢陽 先生 靈前에

 

1947년 7월 19일, 惠化洞 로터리에서 자객의 흉탄으로 목숨을 잃으셨던 66년 전의 충격적인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지금 이 글을 亡命地 일본에서 쓰고 있습니다.

일제가 패망하고 온 겨레가 그 포악한 발톱에서 풀려나오자, 先生께서는 지체 없이 선구적인 조직 建準(건국준비위원회)을 결성하시고 마치 九天에 떠서 하늘을 덮는 나래로 단숨에 千里를 나는 대붕(大鵬)과도 같이 독립된 민족국가를 세우시고자 종횡무진의 활약을 개시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 때 나는 년소한 학생이었을 뿐이나 짧게 끝난 해방공간의 나날 先生께서 내게 안겨주신 벅찬 감동은 이미 오랜 세월이 흘러간 옛 일이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가슴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부터 先生을 시기하는 무리들로부터 呂아무개는 총독부 일인들로부터 돈을 받아먹은 파렴치한이라느니, 일제의 회유에 넘어가 제 민족을 배반한 제2의 왕정위(汪精衛)라느니, 얼마나 헤아릴 수 없는 비방과 중상의 공격을 받으셨습니까. 先生에게 비난공격을 퍼부은 분자들은 누구였냐 하면 先生께서 돌아가신지 이태 뒤 같은 운명적인 비극으로 목숨을 잃으신 金九선생의 말씀을 빈다면, 적들이 항복을 받아들인 전날 밤까지 일제의 총독부를 스스로의 거성(居城)으로 여기면서 적의 승리를 위하여 모든 충성을 아끼지 않았던 친일파의 무리들이 아니었습니까.

 


 

탁치(託治) 문제를 두고 찬반 두 파로 주장이 갈라졌을 때 先生의 주장은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5년을 한도로 하는 4개국(未英蘇中) 공동신탁통치를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先生의 주장을 반대하는 무리들은 마치 찬탁이 민족의 얼을 외세에게 넘겨주는 비굴한 처사라고 주장하면서도, 실상 속내의 생각은 南쪽만의 단독정부를 세운 후에 북벌(北伐)을 단행한 다음 南北을 통털어 일국 영구신탁통치 밑에 두고자 하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꾸민 흉계대로 국토는 南北으로 분단되고 부자 형제가 피로 피를 씻는 끔찍한 동족상잔의 비극은 일어나고야 말았으며 이 비극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선열들께서 우리 민족에게 통일 이상의 지상명령은 없으며 따라서 모~든 통일은 선이라고 외치시다가 비극적인 삶을 마감하셨습니까.

 


 

先生께서 흉탄을 맞으시고 숨을 거두시던 66년 전의 그날을 회상하면서 다시금 오늘날 민족의 지상명령은 무엇인가를 가슴 속에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於 日本 정 경 모

 

 

 

*** 구순의 정경모 선생님의 글이라는 점을 감안, 표기하신 그대로 전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