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rnal Youngman Mongyang
Revolutionaries of freedom and independence
National leaders ahead of the times

몽양 자료실 > 글과 논문

글과 논문

제목 해방정국과 몽양 / 송남헌
작성자 몽양사랑지기
작성일자 2021-02-09
                              해방정국과 몽양


                                                                                                                     
                                                                                                                  

 송남헌(전 김규식 선생 비서실장)


 
제가 몽양 선생님을 처음 뵙게 된 것은 1936년입니다. 36년에 제가 처음으로 서울에 올라왔을 때 몽양 선생을 뵙고 그 당시에는 지금은 작고했지만 큰 따님 난구씨가 국민학교 6학년, 지금 북에서 평화통일위원장을 하고 있는 여연구 씨가 국민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해방정국과 몽양

1942년 여름에 제가 동경에 있을 때 몽양 선생님께서 동경에 오셔서 각 대학 학생들을 모두 만나보시고 미구에 독립이 될 조국 해방의 역군이 되어주길 설득하는 그런 작업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43년 3월에 제가 경기도 경찰국 유치장을 거쳐서 서울구치소에 갔더니 몽양선생께서 구치소 2층 6방에 계셨고 저는 21방에 있었습니다. 법정에 오가는 동안 그때는 용수를 써서 누군지 분간이 안 되었지만 몽양 선생은 수염을 기르고 계셨으므로 몽양 선생에게 경의를 표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인연을 거쳐서 45년을 지나 46년 5월에 좌우합작위원회가 우익을 대표해서 김규식 박사, 좌익을 대표해서 여운형 선생이 중심이 되어서 좌우합작운동을 할 때, 저는 우익측 비서책임자를 맡았고, 좌익측의 비서책임자는 지금 사회를 보고 계시는 이란 동지의 부친이신 이임수 선생이 맡으셨습니다. 이런 연유로 해서 몽양 선생님과는 약간의 인연을 맺어오다 47년에 불행을 당하셨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이 모두가 우리 민족이 우리 힘으로 해방이 못 되고 미.소라는 연합국의 힘에 의해서 일본 제국주의에서 해방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방 직후에 우리 민족을 이끌어나갈 지도자들은 대충 다섯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승만박사, 김구선생, 김규식 박사. 그리고 여운형 선생, 그리고 좌익에는 박헌영씨, 이 다섯 분들이 우리 민족의 운명을 결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미소 양대국이 힘을 합쳐 연합국의 승리를 가져왔고, 우리나라는 해방은 됐지만 얼마 안 가서 미소냉전이 시작하는 가운데 우리 민족은 불행하게도 이 냉전논리에 이끌려서 민족이 분열된 것은 여러분도 잘 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가운데서도 이승만 박사나 김구 선생은 한 분은 철저한 반탁, 그 반탁은 불순한 반탁이라고 보여지고, 김구 선생 반탁은 민족주의에 의한 반탁이라고 보여집니다. 왜 불순하냐 하면 당시에는 북한에는 소련군이 진주해서 민족반역자 친일파들을 없앴지만, 남쪽에는 친일 민족반역세력이 그대로 남아있는 데다 북에서 내려온 그 세력마저 합한 세력을 , 이승만 박사가 기반이 없었기 때문에 그 세력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만일 통일정부가 수립되는 날에는 자기들이 설 땅이 없다고 해서 반탁을 외쳤던 것입니다.
그래서 친미, 반공, 반탁 이것이 당시의 이승만 박사를 중심으로 한 세력들의 구호라고 한다면, 이것은 순수한 통일을 염원하는 민족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을 한 집단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조선 공산당의 박헌영씨는 초기에는 좌우합작운동에도 협조를 해서 좌우합작운동에 적극 나섰었지만, 이 분도 미소냉전 가운데에서 소련 일변도로 기울어지기 시작해서 좌우합작운동을 좌초하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좌초된 민족주의 노선


그에 비해서 김규식 박사나 여운형 선생은 우리가 평화적으로 통일 독립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친소 반미도 불가하고, 친미 반소도 불가하고, 우리는 미소 양대 세력가운데서 지혜롭게 행동해야 된다하여 좌우합작운동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좌우합작운동이 성공해서 통일 독립이 될 경우에는 제가 지적한 민족반역자 친일파 세력들의 설 땅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7월 19일 불행하게도 바로 그러한 집단에 의해서 여운형 선생은 피습을 당했다고 봅니다.
여운형 선생과 같이 폭넓게 북의 김일성씨도 만나고 박헌영씨도 만나고, 또 우익과도 협의를 하고, 폭넓은 민족화합운동을 전개해서 이 어른이 만일에 그 당시에 피습이 안 되었더라면 김규식 박사와 더불어 좌우합작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우리 통일운동에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렇게 되지 못한 점을 아쉽게 생각합니다.
냉전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새 시대를 맞이해서 우리는 몽양 여운형 선생이 걸어온 그 발자취가 새로운 평가를 받아야 되고, 평화적으로 남북이 통일되기 위해서는 몽양 여운형 선생의 정치노선을 충분히 검토해야 될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항목선택

카테고리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자
56 여운형의 독립운동과 체육문화운동 몽양사랑지기 2021-03-04
55 2) 몽양과 6.15 시대 3) 6.15시대와 몽양 4) 날로 새로워지는 몽양 / 조영건 몽양사랑지기 2021-02-20
54 몽양과 6.15 시대(1) / 조영건 몽양사랑지기 2021-02-20
53 해방정국과 몽양 / 송남헌 몽양사랑지기 2021-02-09
52 몽양 여운형을 생각하며 / 문익환 몽양사랑지기 2021-02-01
51 건국준비위원회 인민공화국 수립에 대한 몽양의 심정 / 이기형 몽양사랑지기 2021-01-29
50 여운형은 누구인가? / 김영식 몽양사랑지기 2021-01-18
49 몽양 여운형 암살 - 1947년 7월 19일 / 김형민PD 몽양사랑지기 2020-12-07
48 신한청년당과 몽양 여운형 - 3ㆍ1운동의 ‘지하수맥’ 역할 / 김삼웅 몽양사랑지기 2020-12-07
47 몽양 여운형의 독백 (2) 몽양사랑지기 2020-11-22
  1   2   3   4   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