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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론, 여운형 / 김 형 준(金 午 星) <신세대, 1946. .7>
작성자 몽양사랑지기
작성일자 2020-06-04


인물론, 여운형

 



김 형 준(金 午 星)

지도자는 초인이 아니다. 그는 인간이며 인간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지도자가 지도자되는 소이(所以)는 모든 인민이 혹은 휴식하고 혹은 후회하고 혹은 전락하는 온갖 전변의 가운데서 홀로 온갖 수난의 시련을 통해서 휴식, 후퇴, 전락을 모르고 (부절)不絶히 자기를 성장시켜 온 것이다. 만일 인민전체가 받는 수단은 (그가 부득이한 망명이라 할지라도) 벗어나서 오랜 세월을 인민을 떠나서 지냈다면 더구나 그 인민을 떠난 도피의 생활이 인민의 수난과는 거리가 멀은 화려한 생활이었다면 그는 어떤 새로운 환경이 전개되었다 할지라도 그가 인민의 지도자로 나타날 자격은 없는 것이다. 더욱이 같은 현실 안에서도 모든 인민이 고난에 헤매는데 어떤 영리한 수단으로서 자기 홀로 안일히 지내든 자가 갑자기 현실이 바뀌었다하여 뛰어나와 인민의 앞에 지도자연(指導者然)하고 나타나는 것은 지도자에 대한 일종의 위독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민족의 지도자는 그 민족과 함께 민족적 수난 속에서 자기를 단속시키고 성장시킨 자가 아니면 안될 것이다.

 

몽양 여운형씨는 우리민족의 수난의 시련 속에서 나타난 민족최대의 지도자인 것이다. 그는 조선민족이 일제의 폭정에서 이탈 해방되려는 의지를 표시하는 3․1운동이 터진 뒤 곧 해외로 망명하여 조선민족의 자주독립에의 뜻을 세계에 알리려고 국제외교무대에 활약하신 때도 있었다. 간교무쌍한 일본의 위정자가 세계의 특례를 지어 식민지 백성의 한 망명객인 여운형씨를 국빈으로 초청할 때 그는 대담하게도 거기에 응하여 당당하게 조선의 독립을 주장하고 상해로 돌아온 일도 있다. 그 뒤 집요하게도 추적하는 일본관헌에게 체포되어 국내로 들어와서 6년의 악형을 치르고 나와서는 혹은 신문사장의 의자에서 혹은 일개 체육회장의 위치에서 또 혹은 한낱 필부의 처지에서 조선인민이 받는 온갖 박해와 설움과 인격적인 유린을 받으면서 조선인민의 의지대로 그들과 같이 반일투쟁에 참가했으며 그들의 방향을 지도해왔다.

 

일본의 만주침략으로서 발단된 전쟁 중에는 청년들에게 반일감정을 선동했다는 이유로서 다시 7개월간의 영어생활을 받았으며, 출옥하기가 바쁘게 혹은 이권과 관직으로서 유혹하고, 혹은 투옥, 학살 등으로서 위협하는 총독당국의 악랄한 정책을 혹은 혁명가적 기백으로 완강히 거절하며 혹은 정치가적 수완으로 교묘히 회피하야 수많은 소위 민족지사, 사회지사 보다 대일 협력, 심하게는 일제의 주구로서 전락의 길을 강요받았으나 우리 여운형씨만은 고절을 사수하였으며 뿐만 아니라 그 무서운 일본관헌의 총검으로서의 감시와 위협과 수색 밑에서 과감히도 지하운동을 전개하야 수많은 동지를 규합하고 대중을 결속하여 반일투쟁을 지도하였으며 외국의 혁명단체와 연락하여 내외호응의 일대 항일전선을 전개하려는 대담무쌍한 계획까지 세웠던 것이다. 이러한 수난의 시련을 통해서 금일 조선민족의 지도자로서의 지위는 성축되어 온 것이다.

 

여운형씨의 존재가 너무도 거대함으로 해서 거기에서 오는 온갖 반발적 현상도 경시치 못할 사태이다. 일부 정객들은 혹은 자당의 당시(黨是)를 여운형 타도에 두었으며 혹은 무한의 허구로서 중상 무고를 일삼고 있으나 거벽에 향하는 소인의 발길질에 불과한 것으로서 대중은 거벽에 부딪혀 부서지는 그들의 절름거리는 발길을 목도하고 있음은 차라리 통쾌한 일이라 할 것이다.

 

여운형씨는 정치지도자로서의 온갖 조건을 구체하고 있다.

 

첫째 그는 조선의 정객 중에는 찾아볼 수 없는 참으로 천혜적인 육체를 가지고 있다. 그 늠름한 풍채와 영웅적인 기상과 생기발랄한 체격은 누구에게나 일종의 통쾌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그의 늠름한 풍채는 남에게 위압하는 감정을 주지 않으며 그의 영웅적 인상은 남에게 오만한 태도를 보여주지 않으며 그의 생기발랄한 체격은 남에게 경배부박(輕俳浮薄)한 느낌을 절대로 주지 않는다. 여기에 여씨의 육체의 비밀이 숨어있는 듯싶다. 그는 누구에게나 친근감을 주며 겸허한 인상을 주며 신선한 느낌을 준다. 아마도 이것은 육체의 비밀이외에 또한 씨의 평소의 높은 교양에서일 것이다. 그는 금년에 회갑을 맞는 노인이지만 언제나 청춘같은 신선발랄한 기상을 상실치 않는다. 씨의 이러한 육체적 조건이 정치가로서의 다시없는 호조건임은 물론이거니와(외국인들까지 그의 풍채와 체격에 좋은 인상을 말하는 자 많다) 많은 사람을 주위에 집중시키는 지도자 영솔자(領率者)로서의 호조건도 되는 것이다.

둘째 그의 명랑 활달한 성격이다. 그는 때로는 심사숙고하고 자아반성과 회오의 염에 자기를 물각하는 때도 없지 않으며 때로는 성난 파도와 같아서 노하면 전후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격한 성격의 소유자이면서도 그것은 그에게 있어는 마치 가을 소낙비와 같은 현상으로서 일과 후에는 다시 구월달의 하늘처럼 청징하고 명랑하고 활달한 심정을 가지고 지내는 것이다. 그는 스포츠를 제일의 취미로 수호하는 모양인데 아마도 이 스포츠적 정신이 그의 명랑쾌활의 심정을 더 길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더욱이 그는 참으로 무욕의 인이어서 세간에서는 그를 무슨 정권욕의 소유자인 것처럼 비방하고 있으나, 그는 한점의 사욕이나 정치적 지위에 대한 탐심이 없는 이로서 너무도 지나친 무욕주의 때문에 때로는 세간의 비난을 무서워서가 아니라 귀찮아서 온갖 지위를 사양하려는데 동지들의 뱃심없다는 비난을 받는 정도인 것이다.

셋째 그의 지도자적 위치를 결정하는 것은 그의 생래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적 정신이다. 여운형씨는 물론 상당한 민주주의적 교양을 받은 분이다. 그가 영어 불어에 능한 것으로도 그의 영불식 자유민주주의의 교양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적 정신이 단순히 후천적 교양에서만 생긴다면, 예를 들어 이승만씨 같은 분은 거의 일생애를 민주주의의 나라와 그 교양속에서 살아온 분임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그 반민주주의적 군림적 독재적인 태도를 이해할 길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여운형씨의 민주주의적 정신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그 민주주의적 식견이 아니라 그 인간적 품위와 생래적 성격을 지적함이다. 여씨는 타고난 민주주의자 자유주의자다. 그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 주장이 옳은 경우에도 많은 사람이 다른 것을 주장할 때에는 나는 내 주장을 포기한다』 이 말은 잘못 들으면 씨가 아무런 주견이 없는 듯이 생각될는지 모르나 그것은 자기의 주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다수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민주주의적 지도자의 아량에서인 것이다.

 

이것은 씨의 장점이 되는 동시에 단처(短處)라고도 할 수 있으나 그의 이러한 민주주의적 정신이 겸허한 태도와 관용의 포용성으로 나타나서 많은 사람을 포섭시키고 집중시키는데 있어서는 타자의 추종을 불허하는 장점이라 할 것이되, 때로는 정도를 지나쳐서 자기의 고수해야할 지점까지 넘어 양보하는 예가 있음은 정치지도자로서 한낱 단처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겸허와 포용력을 가진 민주주의적 지도자가 인민의 혁명적 세력을 총집결해야할 금일에 있어 가장 거대한 역할을 가질 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넷째 그의 지도자적 위치를 결정하는 조건의 하나로서의 현하의 웅변을 들 수가 있다. 웅변을 가지지 못한 정치가는 무장을 완비치 못한 병사와 갖다. 웅변만이 정치적 기술은 아니다. 엄밀한 기획과 임기응변의 전술이 정치가적 성격을 규정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조직대중이 아닌 비조직 인민대중을 지도해 나아가는 정치지도자에게는 웅변은 최대의 무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여운형씨는 참으로 위대한 웅변을 소유하고 잇다. 그 늠름한 체구가 단상에 나타나 웅장한 목소리로 정열에 북바치는 웅변을 토할 때 청중은 그만 씨의 논변의 포로가 되고 만다. 웅변은 정연한 논리와 풍부한 성량과 활달한 제스추어가 있어야 하지만 그보다도 더 귀중한 것은 감정의 유로가 있어야 한다. 청중을 감동시키는데는 감정에의 호소가 가장 효과적인데 청중의 감정을 움직이려면 강연자 자신이 풍유한 감정의 소유자가 아니면 않된다. 여운형씨는 참으로 다정다감한 분이다. 그는 슬플 때 울 줄 알고 기쁠 때 웃을 줄 아는 다채한 감정의 교류 속에서 사는 인간이다. 그가 단상에서 청중의 환호를 독점하는 것은 그 감정의 자연스러운 유로(流露)에서라 할 것이다. 여씨가 울면 청중도 같이 울고 여씨가 웃으면 청중은 같이 웃는다. 이러는 동안에 여씨는 자기의 정치적 이념을 충분히 청중에게 전달한다. 이러한 웅변술은 그를 조선의 최대 정치가로 만드는 중대한 조건의 하나가 된 것이다.


여운형씨의 금일의 존재는 실로 거대하다. 그가 동년배의 온갖 정객들이 역사를 역행하는 반동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로 어디까지나 세계사적 행정에 기여하려는 진보적인 노선을 걷고 있음에서 조선의 정치적 과정에 대한 그의 존재는 참으로 존귀한 것이다. 여운형씨에 대한 온갖 비난 무고 중상이 그를 추종하는 인민대중의 증가에 따르는 동년배의 몰락우정을 밟는 노(老) 파시스트 국수주의자들의 시기에서 조작되고 있음도 우리는 주목할 사실이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민주 앞에 부과된 임무는 민족의 자주 독립의 완성과 민주주의국가의 건설이다. 이제 이것을 완수키위해서는 역사를 역행하려는 국수주의자 민족파시스트 그리고 온갖 민주반도(民主叛徒)를 제외한 온갖 민주주의세력의 총집결에서만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민주주의 세력의 집결은 스스로 인민전선적인 성질을 가지게될 것이다. 그런데 여운형씨는 인민전선당을 그의 정치적 박력으로서 갖고 있다. 조선인민당이 그것이다. 일제가 패망에의 언덕길을 걷게 되어 최후의 발악을 하던 1943년부터 지하공작적으로 결성된 건국동맹을 역사적 단초로 하여 발전된 조선인민당은 인민 각층에서 가장 혁명적 세력을 집결시킨 인민전선적인 정당이다. 이 당은 여운형씨의 정치이념을 중핵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오늘의 민주주의적 민족통일에 있어 이 인민당의 역할이 거대하였던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며 그것은 따라서 여운형씨의 위대한 역할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금 여운형씨가 민주주의 조선의 최대 정치지도자로서 지칭됨은 그가 조선의 세계사적 과정을 똑바로 인식하고 그 노선을 인민대중 앞에 제시한 까닭이다.

장구한 형로(荊路)를 걸어온 민족수난의 시련 속에서 성장하여온 우리의 민족지도자의 한사람인 여운형씨는 그 거상을 민족의 면전에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지도자를 가진 조선인민의 앞에는 광휘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조선인민의 기대를 독차지해 가지고 잇는 여운형씨의 앞날은 참으로 찬연한 것이다.
지도자는 세계사적 지표다. 이 지표를 향해서 온 인민은 그 보위를 옮기게 되는 것이다. 민족의 거상! 세계사의 지표! 지도자의 임무는 실로 거대한 것이니 여선생의 발길 앞에 아무런 차질이 없기를 충심으로 기원하는 바이다.


< 신세대, 194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