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양청년'은 말한다-몽양여운형선생 69주기에 부쳐
송두헌 2016-06-20 429

 

                 몽양청년은 말한다

                              - 몽양여운형선생69주기에 부쳐

                                     

                                                                            송 두 헌

 

 

1. 허깨비공화국은 언제 깨어나나

대한민국을 스스로 비판·고발한다는 것은 심히 괴로울 수밖에 없는 노릇이긴 하지만, 어쩔거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좀 더 새롭게 부릅뜬 눈으로 치떠보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의 자아고발인 것임을.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한반도가 좌우합작·남북연합으로 통일된 민족으로 하여금 정정당당한 몸짓이었다는 것은 얼마나 기막힌 눈물겨움인가, 이러한 숨통을 트면서 꽉 틀어막힌 사방을 향해 악착스레 몸부림치면서라도 살고 싶음은 지극히 자연스런 탄생의 현상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도 상황은 전혀 딴판이다.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이 나라는 그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70년 전이나 지금이나 치욕스런 연장선상의 생긴 대로의 그 모양 그 꼴로 완전 해방조차 이루지 못한, 미완성의 그것으로 갈팡질팡하는 상태다. 건국이념에 둥지를 튼 기둥은 그 뿌리부터 뽑힘을 당해 쓰러지고, 그리고 파묻혔다. 미리부터 치밀한 기획·준비도 없이 허겁지겁 급조한 날림공사 속에서 무턱대고 대한민국이라는 단독정부부터 얼렁뚱땅일지언정 일으켜놓고 보자는,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야만스러움이었다.

 

다시 말하면 국가백년대계의 첫 역사의 정체성이라 할 합리적 기본형이 들어설 여지조차 없도록, 친일 반민족이 친미 반민족 틀에 되 갇혔음에 따라, ‘잘못되었으니 다시 고쳐 출발하자고 재고하기도 전에 해방민 의식은 38선으로 단절된 윤곤강 시인의 지렁이의 노래꼴이었다. 문득 아리랑 민요가 떠오른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그리고 소월의진달래꽃도 생각난다. ‘나 보기가 역겨워 / 가실 때에는 /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이 한스러움은 한반도 전역을 통틀어 심심히 배어져 있다.

 

이것은 지지눌려 꼼짝달싹 못하는 원한 맺힘으로부터 38, 그리고 곧장 분계선으로 이어진다. 마냥 주눅 들어 이리 흩어지고 저리 흐트러져 어리둥절,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 양반, 상놈으로 인한 갈라섬으로부터 ‘38선의 긴 세월에 이르도록, 그토록 바란 민중적 혁명을 찾아올 줄을 몰랐다.

 

사실, 혁명은 다름이 아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겨울 동장군이 물러가고, 산에 들에 봄이 왔다, 는 바로 이것이다. 물론 자연적 현상이지만 굳이 설명하자면 기적과도 같은 혁명의 그것이다. 그러니까 자연스럽다. 좀 더 쉽게 예를 들자면 이렇다. ‘아리랑오리랑으로 대입시켜 혁명해보자.

 

오리랑 오리랑 오라리요

오리랑 고개로 넘어온다

나를 사랑한다 오시는 님은

십리 밖에서 빨리빨리 오소라.

 

요컨대 이전의 뒤엎음이 혁명의 방식인데도, 이를 아는 선지자, 지식인, 선생님 등등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느냐. 그들은 틀림없이 이 땅에 있었다. 양반이건 상놈이건 간에 희망은 어찌도 이같이 용솟음치는 것이냐라고 프랑스 한 시인의 울부짖음과 똑같은, 해방 직후 파란 만장한 고난을 극복하고 혁명 대열에 몸 던진 지도자들이 왜 없었겠냐마는, 생색낸다는 꼴불견에 손사래를 내저었다는 것이다. 셀 수 없도록 많았다.

 

민중항쟁의 역사적 과정에 유독 꿈꾸는 해로 통하는 몽양 여운형 지도자가 있었다. , 그렇다면 이제부터 행동이전의 로 부터 시작해보자. “친일을 하면 살고 독립을 원하면 죽는다고 했는데, 드디어 일본이 항복해서 망했다.

 

이번에는 친미를 하면 살고 해방을 원하면 죽는다고 했는데, 드디어 친미친일이 한꺼번에 들고 일어섰다. 그리고 남북단독정부수립을 위한 시나리오가 작성됐다. 한반도는 이제 없어질 판인가. ‘건국동맹에 의한 남북의 좌우합작정부수립이었다면 한국전쟁은 터질 수 없었으련만, 완전 해방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민족지도자가 몰림을 당해 죽다니․․․. 남북 양쪽 진영 간의 생각과 방식이 다르다는 그것으로 반쪽만의 백성을 찍어내서 적당한 시기에 총살로써 산골짜기에 파묻어야 대한민국이 살아남는다는 이것이야 말로 야만의 비극만을 되풀이하는 악독이었다. 이 악독은 그 이전부터 틀어박혀 있었다.

 

여전한 독기를 품고 성장한 것이었다. 무럭무럭 뻗쳐나갔다. 친일친미가 양떼라는 민중들을 내몰았다. 반혁명의 불길한 구름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곧 일련이 무슨 난리가 터질 것이라는 예감이 밀려닥쳤다. 바로 해방이라는 농투성이대상의 예비검속, 살생부 작성으로부터 시작하는 국민보도연맹은 예정된 한국전쟁을 향해 거침없이 치닫고 있었다. 한국전쟁이다.

 

, 이렇다면 누가 먼저 불을 질러 똑같은 동족의 피붙이들에게 학살의 총칼을 들이대 갈겼는가. 그리고 그 악독의 원흉은 누구냐는 게 전쟁범의 확인으로 귀착된다. 반공멸공을 빌미로 미국을 이롭게 하면서, 살고 싶어 하는 농민노동자들은 단독정부대한민국을 호위하는 들러리로서의 총알받이와 38선 이남의 권력을 보전유지하기 위한 방어망, 말뚝들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말뚝국민은 오직 대한민국이 최고의 가치라고 하는 국가제일주의에 휩쓸려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하는 민생을 짓밟아, 또 언제 터질지 모를 공포 불안의 터널이라는 휴전을 거쳐, 그럼에도 아직 전쟁이 안 끝난 현 정전상태의 암흑에 처해 있다. 동트는 새벽을 열리지도 않는다.

 

끝없는 절망이다. 그래서 두 동강난 지렁이는 오늘도 죽을 지경이다. 게다가 이제는 전시작전권조차 잃어버렸으니까 전쟁을 끝낼 권리도 없음은 물론, 국제 간의 자주권 없는 왕따돌림시세, 때리면 맞기만 하는, 대리전쟁으로 인한 한반도는 전쟁폐기물쓰레기장이어야 하는 직전의 상황에처해졌다.

 

 

2. ‘조국통일과 동떨어진 청년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가

 

말할 것 없이, 자주적 주도권마저 없어진 지도 오래다. 아니, 그냥 떠넘겨져서 오락가락하도록 외세에 짓밟혔다는 것은, 미숙성된 저항력에 기인한 여덟 달 반의 면역성 결핍에서 오는 없다 모자란다일 수밖에 없으므로, 다른 어떤 누구로부터 되찾을 수도 없는 성질의 것이다. 무조건 잘못됐다. 이렇듯 어찌해 볼 여지조차 없어졌으니, 왜 미치고 환장한 노릇이 아니겠는가. 막무가내 짓눌려진 국토방위 의무로 한국전쟁을 질질 끌고 가야 할,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는 대한민국의 총알들은 죽기 살기를 무릅쓰고 짓뭉개지는데, 그나저나 이 땅의 청춘스러움은 살아서 꿈틀거리기라도 하는 건가. 세계사 속에 자기만의 유일한 자유정신을 전개하여 실현하고자 하는 역사철학의 계기라도 간직하고 있느냐는 말이다.

 

청춘, 더구나 같은 땅 하늘 아래, 똑같은 말과 글로써 숨 쉬는 청년들인 바에야 서로서로 뜨거운 피 통하기는커녕, 70년에 이르도록 DMZ를 경계로 하여, 여차하면 너 죽고 나 죽자로 맞서 총칼을 겨누고 있으니‥‥, 이것은 어느 나라로부터 끌어들인 전쟁의 망국병인가.

 

나라는 망했어도 산천은 있어 봄들자 옛 성터에 풀나무만 짙푸르다는 권력 쟁탈전 속성의 덧없음은 결국 제 갈 데로 가고야 말겠지만, 속절없음의 운명체는 절멸의 끝장에 도달하고야 만다. 망해서 없어졌다. 그러고 난 다음엔 무엇이 오게 돼 있는가, 전쟁밖엔 남아있는 게 없질 않은가, 그나마 아주 망각의 늪에 빠져서 돌이킬 바도 없으니, 지난 한국전쟁은 또 한국전쟁을 불러들여야 할 판이다.

 

어쩔거나, 이것조차 예견, 판단해낼 줄도 모르는 주제꼴에 무슨 놈의 국가란 말인가, 지금까지도 계속 전쟁연습의 되풀이가 그 직접적 증거인데도 어쩔 수 없이 전쟁 포로들 끌려가듯, 질질 끌려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냉혹하게 칼질. 분석하자면 이렇다. 전쟁으로써 실제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라는 이미 폐기 처분에 이른 망한 나라나 마찬가지다. 전쟁 다음에 또 전쟁이어야 하니까. ‘헛것밖에 남은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허깨비공화국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전쟁쪽에 집중하지 않으면 창조경제또한 유명무실해지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죽을 판이다.

 

사실 분단구조는 애당초 미국과 소련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그 이전부터의 태생적 양반상놈의 대립구조라는 잘못됨으로 비롯하였다. 다시 말하면 일제침략에 결박당한 3.1만세의 처음 저항력이 명예로운 독립에 이르지 못하고, 끝내 짓찢어진 분열로 지탱해왔다는 것은, 그로 인해 일제 잔재들뿐만이 아닌, 무조건 의존 피동형으로 몰려버렸기 때문이다.

 

왜 몰렸는가, 물컹하기 짝이 없어 더 큰 양반이라 할 의 일본에 빌붙다 못해 미국에 들러붙어, 그 시킴에 굽실거리면서 계속 목숨이 붙어있는 한, 후대로 끌려가도록 조장했기 때문이다. 피동형 역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가 살아 있었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3.1운동을 못 잊어, 우리 스스로에 의한 3.1정신과도 똑같은 참 모습의 자유정신을 회복하고자 발버둥친 4.19혁명의 소산인, 비록 찢어지게 가난이야 할망정 국토개발5개년계획이라는 자생적 발동에 대하여, 생명어린 협력은 그만두고 구악을 일소한다는 일제 침탈식의 5.16군사반란에 의해 여지없이 강탈도둑질당했다는 것은, 역시나 ‘4.19 청년열정에 대한 반역인 공갈협박전쟁이라는 공포의 탱크캐터필러로 과거의 반민특위를 박살냈듯, ’반민주행위처벌법부터 짓뭉개버렸다. 따라서 일제 망령의 전염성 인자(因子)가 이번에는 미국을 위시한 자유 우방과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한다로 되끄집어낸 것이다. 그리고 1965년 한일회담이다.

 

4.19혁명의 소산인 국토개발5개년계획을 흑막 속의 속임수로 전민족을 능갈쳐버린 것이다. 텅 빈 속의 허수아비 꼴에 들씌워진 형상으로 4.19혁명의 통일로 가는 진로를 무찔러 을러대고 압제하는 독재적 수구 행태가 앞뒤 없는 횡행으로 짓밟는 반민족의 폭력이었다. 지금도 그 목소리가 들려온다. 깨끗한 희망의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가 왜 잘못이란 말이냐, 또 한 번 절망에 꼬꾸라진다. 새로운 조국의 미래로 줄기차게 나아가고자 했는데도 대한민국이라는 반쪽의 썩은 그루터기가 무법이 법인 양, 시커먼 안경의 뒷짐을 진 독재자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다.

 

지금도 그렇다. 자나 깨나 국민이 바란다는 통일대박또한 진실일 수 없는, 하등 메아리 없는 헛소리, 즉 속임수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길게 드리워진 독재자의 그림자밖엔 아무것도 없다. 역시 그 아버지의 그 딸이다. 하다못해 될성부른 근거라도 내놓고 난 다음, 공개 토론한 후에 뭐 이렇다 저렇다는 분단민의 소망에 딱 들어맞도록 자신 있게 선행 했어야 함에도 (독재)가 하는 말이니까 말뚝들이라는 이름의 국민들은 무조건 믿고 따르라는 식의, 아니 혁명을 민간에게 이양하고를 철석같이 공언했을 때, 무슨 신용할 만한 확증도 없이 슬그머니 흑구렁이 담 넘어가는 장기집권의 일본식 유신이었듯, 그렇게 <흥부전>통일대박을 믿어보노라면 저만치서 날 잡아잡수라고 반갑게 손짓할 것이라는 환상이자마자 헛다리짚는 꼴일지라도 모를, 반신불수의 전쟁연습은 곧흙수저물고 낭떨어지로 떨어질 지경이 돼버렸다.

 

그런데도 반통일 구조 자체가 곧 통일대박이라면서 조선인민공화국이 스스로 멸망, 아니면 필경 위대한(?) 대한민국에 항복하고야 말 것이란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현재 북핵은 존재하는데, 도무지 쌓이고 쌓인 부패가 악질성으로 부글거리는 판에, 물 건너 일본의 자위대만 미소 짓게 하는, 그리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마수가 이런 틈새로 이용해 다시 한 번 뻗쳐오지나 않을까 심히 걱정스럽다.

 

3.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위대한 결속은 곧 비판적 저항권으로 똘똘 뭉쳐져서 외부로부터 침입해오는 악질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야 하는 결판의 싸움이다. 곧 정의로움의 조건이야 한다. 책임 회피로 나 몰라라 외면할라치면 금세 한 구퉁이로부터 무너지기 시작하는 망국에 이른다. 그 다음은 반통일론으로 내버려진, 사람이 살수 없는 허허벌판의 땅이다. 마찬가지로 면역성 저항력이 제 구실을 못하면 비정상의 그것으로 허수아비+도깨비=허깨비라는 구조의 헛것이다. 그것들은 아무 것도 모른다. 수동형의 허깨비들인 즉, 이미 독자적 생명력마저 상실했기 때문에 무책임이라는 아주 없음의 이유이기도 하려니와, 우선 남에게 매달리고 보자는 버릇형식의 허탕만 저지르는 과거형의 반복일 수밖에 없게 된다.

 

기껏한다는 짓거리가 앞으로 전진해 나아감도 없는, ‘죽는 연습에 불과한 툭하면 무슨 역사적 창조나 하는 것처럼 헛바람을 일으키고 또 떠벌인다. 예를 들면 이렇다. “우리들의 말과 행동은 일관성이 있다. 뭘 모르는 부정적 속물들(노동자농민)과는 달리 진실로 궁정적이면서 합리성에 터해 있다. 그러므로 상층구조의 지도층은 아래 서민층을 이끌어가는 권력구조인 것이다. 이에 따른 채찍질은 필요조건이다.”

 

따라서 지도자와 피지배자의 양분된 관계는 지배자의 긍정적 현재성에 절대 불허일 뿐만 아니라, 오직 차별화된 경계가 필수적이다.

 

다시 말하면 종은 종놈이고, 종을 다스리는 상전(관료)은 그 위의 권위인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이라는 정체성은 절대다수의 민주적 가치라고 하는 국가보안법으로 보장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국가보안법이라는 통치 형태의 만능 도깨비 방망이는 동어반복형으로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또 변함없는 반통일론의 내일이다. 변화해서 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야 한다. 오로지 무사안일의 오늘이 곧 대한민국이라는 것. 그렇다. 대한민국은 요지부동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청년들은 그게 아니다. 나라를 걱정하는 청년스러움이 곧, ‘()’라고 할진대, 시가 맥 빠진 채 죽어있으면 청년스러움은 끝장이자마자 세상은 황막해진다. “어쩌다 나는 내일 없는 비참한 황무지로 쓸려왔나.” 한탄만의 골골한 울림이 장송곡조의 바람에 술렁거린다. 청춘은 없다. 일제강점기의 조선총독부로부터 적극적으로 허용권장된 유행가를 잠깐 뒤돌아보자, 예를 들어 1930년대쯤의 고운봉 가수가 부른 <국경의 부두>는 속절없이 내몰리다 못해 막판의 퇴폐퇴락에 떨어지는 광경을 직접 내려다보면서 일제는 얼마나 희열에 차 넘쳤던가.

앞산에 솜 안개 어리어 거리에도

압록강 물위에는 뱃노래로다

용암포 찾아가는 떠나가는 저물 길

눈물에 어리우는 신의주의 부두.

 

뱃노래의 강 건너를 바라볼 때, 강 이쪽에서 강 저쪽으로 내쫒기는 민중들은 누굴 믿고 살아왔으며, 또 누굴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하나, 사방을 둘러보노라면 그때나 지금이나 희망찬 청년은 어디에 있는지 안 보이게 마련이다. 똑같은 판이다. 전쟁연습의 군대로 들고나는 통에 폭증하는 실업률의 골방에 적막감이 감돈다. 국가는 청년에게 무엇인가, 일자리가 없어 어두운 골방에 처박혀 죽느냐 사느냐 신음할 지경에 결혼은 무엇이고, 부모 공양이 지금 무슨 낯 도깨비란 말이냐. 대학교를 나와도 빚, 군대 갔다 와도 빚, 살아갈 날도 빚 투성이,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마냥 음산함에 덮인, 몽땅 희뿌연 전쟁터의 시야일 뿐이다. 따라서 나라 걱정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듯이 시의 본질인 살아있음 또한 나라의 존망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운명적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의 한 시인도 이렇게 말했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체험이라야 한다. 시를 쓴다는 것은 더더구나 체험이어야 한다, 가치가 가치 없어지게끔 한꺼번에 처박아 없애는, 허깨비들의 읽는다쓴다의 판별력조차 마비상태인데다가 과거현재미래가 불통하는 맹목 자체의 공허일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의 대오각성에 경악한 벌거벗은 진실조차 체험 없이, 시궁창에서 썩는 연습만 해왔다는 이유에서다.

 

역시, 비정상의 거짓으로 둘러싸인 가짜의 일상일 수밖에 없는, 악취의 실체라는 것이다. 또 잠깐 뒤돌아 짚어보자, 남북통일의 확실한 실마리라 할 좌우합작의 건국동맹지도자를 무차별 테러로 쓰러뜨린 이듬해, 19482월 유엔조선위원단 의장인 인도의 메논이라는 손님을 맞이하매, 여류시인 모윤숙은 이승만과의 허깨비 놀음에 놀아나, 일반 뜻 있는 지식인들로 하여금 낯 뜨거움에 몸 둘 바를 모르거나 말거나, 메논 의장을 구어 삶았건 어쨌건, 남쪽만의 아슬아슬한 메논의 1차로 단독정부수립안이 가결되었음에 감격하여, “나는 대한민국의 탄생을 위해 속옷까지 벗어던진 애국자라고 여봐란 듯, 기염을 토해 미친년처럼 날뛰었다는 것에 대해서, 그래 그렇다면 모윤숙이 대한민국의 국모이고, 또한 최후의 독재살인마로 마감한 바의 이승만 대통령이 허수아비 국부였다면, 미국이나 중국의 국부와는 달리 엉뚱한 딴 나라의 메논이 대한민국의 진짜 국부가 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어쨌건 미래를 향한 악마의 씨앗은 이 땅에 심어졌다.

 

해방을 맞이한 나라의 통합 정통성은 이미 7개월 전의 1947719일에 암살당해 없어졌다는 이유로 장차 극악무도성 구조의 점증으로 쌓여서 툭하면 터져 나오게 마련인, 이런 어처구니없음이 단독정부의 무책임성 고질병으로 전이돼서, ‘정체성 출현의 틈새가 없도록 무법이 곧 새로운 법이라는 미 군정청 경무국장 자리에 있던 그 자제주 도민은 휘발유를 뿌려 전부 태워 죽여라, 대한민국(당시의 단독정부)을 살리는 길이라면 제주 도민쯤은 말살시켜도 좋다는 것. 그리고 이어서 여순14연대사건다음에 반민특위를 해체시킨 후, 한국전쟁은 터뜨려졌다. 그러고 나서 또 한 번 여차하면 무법이 곧 법에 의한 똑같은 한국전쟁의 징조가 얼핏얼핏 어른거린다는 것이다.

 

뻔한 노릇이다. 대한민국의 정의가 테러로 쓰러진 악질적 건국답게 전쟁은 일으켜져야만 하고, 전쟁으로 체질화된 나라는 기어코 전쟁을 터뜨려야만 하는 그것이다. 그러고 보면 국호가 전쟁민국이다. 순전한 백성들이야 뭘 알까보냐. 위에서 꿍꿍이속으로 전쟁을 터뜨리거나 말거나, 먹고살기에 허리가 끓어질 지경의 고달픔에, 백성들은 전쟁의 불난리마저 통째로 끌어안는데 이골이 난, 이른바 얼굴 검어진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겠느냐, 그뿐만 아니라 전쟁이 터질라치면 권력중심부를 지켜내는 국민의 역할인 방패막이였으니, 국민은 총알받이로 피난 가느라 죽어 나자빠지고, 권력층만 살아남아서 영화롭고. 점진적 대동 평화여야 할 터인데도, 자꾸만 그 반대 방향의 전쟁 쪽으로 내달려 가니까,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속담처럼 습관적 습성이 그것이라면 단독정부의 대한민국이 죽으라면 죽고 살라하면 사는, 이미 죽을 판까지 다다른, 비정상의 꼴임에도 마구 밀어붙이고 보자는 우격다짐은 불통만이 오직 불통정치학의 최선으로 말뚝 박은 허깨비공화국이다.

 

따라서 속 뒤집히다 못해 꺼억꺼억 치밀어 오르는 국가관에 대한 구역질이거나 말거나, 그래 그로 인한 토사물이 대한민국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냐. 토사물은 토사물이고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임에, 국민이 싫으면 국가가 아니질 않느냐. 국정교과서 왜곡날조 따위도 그렇다. 민생 위주가 아닌, 일본식의 국가 우선의 압박으로 감 놔라 배 놔라고 비비틀어대니까 말없는 국민은 국민으로서 거부해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발악하는 바, 친일친미라는 외세에 의한 악질악독의 고리는 단연코 끊어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자자손손 후대에 걸쳐 전쟁공포의 진절머리, 너도 죽고 나도 죽는 다 같이 죽는다의 마비상태에서 해방되고, 그리고 통일이어야만 다시 살 길이라는 신념이다. 그러니까 통일이 곧 해방이면서 지금 당장은 눈앞의 가시밭길이더라도 스스로 일어나 몽양 청년답게 뚜벅뚜벅 매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4. ‘몽양청년은 혁명이다

, 그렇다면 현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몽양청년에 도달할 수 있을까, 우선 뭣보다도 찍소리도 못했던 것들이 마치 살판이라도 난 듯이 다시 살아 오르는 부활의 움직임이 필수적이다. 새로 태어나서 전혀 새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은 맨 처음의 허허벌판이라는 황야에서 개척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이제 곧 멸종이라는 절체절명의 남북이라는 두 토막의 지렁이가 아주 뭉개지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조건이라도 없음에서 헤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자각이다. 나는 내가 책임진다. 다른 어떤 것에 의해 끌려간다는 것은, 이미 내가 아닌, 살아있음으로서 갖춰지지 않은, 비현실성의 허깨비 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허깨비들과 연합할 수 없는, 반허깨비공화국에 처해 있다. 허깨비와 반허깨비. 양쪽 간의 전체를 통틀어 아우르기위한 합작 연합의 통일은 세계평화에도 기여하는 위대한 가치가 아니겠는가, 아무 생각 없음의 피동형은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있으나 마나의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날벼락 사건의 참담한 재앙이기 일쑤다. 무관심이니까 무책임일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가 그것이다. 허깨비들 끼리끼리 전혀 어두컴컴한 무의식적 불거짐, 곧 남몰래 은밀하게 수작부리면서 수근수근하다 보니까, 미처 뒷단속 잘해두지 못한 무관심의 인재(人災)’.

 

그럼에도 인명을 하찮게 여기는 풍조를 어떻게든 비켜나가려는 듯, 다시 말하면 꽉 틀어 막힌 숨통 없는 분단구조의 썩음으로부터 불쑥불쑥 터져 나오게 마련인 적체가 그 원인이었음에도, 부랴부랴 에둘러 축소시키기 위해서라도 짐짓, 그냥 그렇고 그런 일상의 흔해터진 교통사고로 애써 얼버무리면서, 참으로 가공할 엉망진창의 상황을 스스로가 묵살하는 꼴이면서, 자칫 광주민주화운동이 북쪽의 간첩에 의한 소행 운운이 아닌 것만 해도 한숨 넘기는 일이다. 따라서 책임 회피의 책임질 수 없다는 무책임의 그것뿐이다.

통일에 무관심한 것처럼 언제는 민생에 관심을 두었던가, 따라서 울타리 밖 주변의 그 누구든, 감히 책임져라고 얼씬거릴 수 없는 청와대의 무시무시한 장막이라는 국가제일주의의 권위 앞에 꼼짝 말고 무조건 굴복하라에 감히 대들기라도 할라치면 파리새끼 한 마리가 황소를 이기려고 한다로 뒤집어엎어 먹방에 우겨넣는가 하면, 툭하면 비행기태우기로 국가보안법을 행사한다는, 통일을 갈망한 한 국가보안법 위반자의 말이다.

 

사실 국가보안법으로 인한 국가폭력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라는 권력구조는 비밀스런 폭력의 공포 시스템이다. 여기에 덮쳐서 또 뚱딴지같은 전염병(메르스)란 말이냐, 불길한 뭔가가 자꾸만 들이닥친다는 것은, 그렇게 되게끔 조성된 조건의 암시임엔 틀림없어 보인다. 전쟁의 징조인가. 본격적인 전쟁발발 직전에는 꼭 눈에 안 보이는 내부의 적에 의한 썩음의 부위부터 발생하기 마련이다. ‘곪아 터진다가 그것이다. 높은 곳에 올라가 일단 조감해보자.

 

이승만 독재의 바통을 틀어잡은 5.16군사반란의 악질성이 ‘5.18광주민주항쟁에 까지 망국의 주원인으로 뻗쳐 있어서 나라 전체를 한꺼번에 뒤엎어버릴 경무대청와대의 독선적 음모가 현재의 대한민국 고질병에 대해서, 바라는 바의 전 국민이 아니면 어느 무엇이 통일론으로서의 처방전을 내놓을 것이냐. 물론, 꿍꿍이속의 책임자는 국민에 의한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박근혜까지 연쇄적 고리로 이어졌음은 두 말할 것조차 없다.

 

다만 앞으로 어떻게 진상을 드러내고 신뢰할 만한 진정성 행동으로 마무리할 것이냐에 응답해야 하는, 국민적 여망에 딱 부합해야 하는 일처리다. 물론 전쟁병도 일종의 전염병이다. 시도 때도 없이 곳곳에서 터지고, 밀치고, 들이닥침직한 뒤숭숭 판에 전쟁병은 확산된다. 이런데다가 바짝 조여 오는 국제관계의 저자세가 미국으로부터 파도쳐 온다. 이른바 중국보다도 미국이 더 잘났다는 구걸아닌, ‘미국 첫째에 대한 엎드림이 제1차적이란다. 굴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까놓고 말해서 사람스러움이라는 마저 깡그리 떠넘겨버린, 앞장선 굴욕을 무릅쓰고 현 시점의 지정학적 처지는 뭐니 뭐니 해도 한미방위조약에 의탁함으로써 국가안위를 보존해 나간다가 그 방책이라면, 이에 역발생해오는 역반응의 폭발력엔 어떤 양태의 것으로 대처해야만 할까, 그렇잖아도 떡 줄 미국은 한국의 방위비가 쥐꼬리밖에 안 되는 무임승차라고 투덜대는 판에, 김칫국부터 입맛 다시는 대한민국의 체통머리가 참 서글플 지경이다. 따라서 과거 한국전쟁의 무책임성일 바엔 내가 가진 목숨마저 내바쳐, 내 대신 세상살이 해달라는 애걸복걸 아니겠는가, 어쨌거나 한심하고도 통탄스런 노릇의 타성일 뿐이다. 한미방위조약에 의한 전쟁발발엔 북진해서 남북통일을 이룩한다는 꿩 먹고 알 먹고의 의존전략이 있어, 대한민국의 승리가 곧 미국의 승리라는 얼토당토않은 속셈이다. ‘아니면 말고가 아니다.

 

미국도 이것을 분명히 알고, 대한민국의 꼭대기에서 미국 자신을 헤아린다는 것이다. 결국 한반도의 거시적 안목은 결정적 시기의 전쟁발발임엔 틀림없어 보인다. 물론, 전쟁을 아주 끝장내기를 확정해버리면야 종전일 터, 문제는 한국의 이해관계로 뒤얽힌 실타래의 오늘이라는 것이다.

 

5. ‘통일의 날을 바라보며

해방 직후. 70년 전의 2, ‘나는 울었다. 학병의 영전에서의 김동석 지식인-시인평론가-개념 없는 직관은 장님이니라는 당시의 처지에서, 생긴 그대로의 고착관념으로 못 박혀진, 물론 현 시점에선 과거형의 통일관으로 밖엔 볼 수 없다 치더라도, 어쨌거나 70년 동안의 38선이 DMZ로 바뀐 것 밖에는 확고부동의 분계선임엔 틀림이 없다. 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감히 통일론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고 드러내놓은 적 없는, 그야말로 통렬하기까지 한 진정성 토로라 할 수 있다.

 

대한사람이 조선사람이 되든지, 조선사람이 대한사람이 되든지, 다시 말하면 일제가 조선을 점령하기 전 그 옛날의 대한을 복구하든지 새로운 조선을 건설하든지 현재에서 양자가 한데 뭉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라고 판정을 내리면서, ‘사람은 스스로 자기를 만드는 것과 같이 대한과 조선이 똑같이 공유한 피붙이로서의 민족은 민족 스스로가 만들어서 자기의 역사를 꾸려내야 한다는 이것은 전혀 새로운 유형의 통일된 민족, 곧바로 동일성으로서의 살아있는 피가 상통하는 혈통으로서의 쌍방이 더불어 세계사 속에서 함께 만남으로 하여 살판의 날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제부터 원점에서 모든 것은 새롭게 만들어져 나와야 한다. 죽어 파묻힌 위대한 가치도 함께 되 살아 나와야 한다. 어떻게든 끄집어내면 나오지 않겠는가.

만나보고 싶네

흩어져 간 사람들

불러보고 싶네

우리 함께 노래를

닝닝닝 닝닝닝

닝닝닝닝

우리들은 함께 사네.

 

그렇다. 물론 이 노래도 새로 만들어져 나온 것이다. 노래를 부르면서 자주자결권의 건국동맹을 끌어내 거침없이 뚫어나가는 남북합작공화국의 부활이야 말로, ‘70년 분단을 해결하는 완전조건에 합당하다 할 것이다.

 

바쁘다. 나라를 함께 일으켜 세워야 하니까, 온 민족 성원이 환희에 넘쳐 일어선다.”

결론은 이렇다.

조선인민공화국도 살고, 환골탈태한 대한민국도 살고 다 같이 산다”. 그리하여 몽양 여운형 통일민족 만세”.

--

 

 

<참고문헌>

몽양 여운형 전집. 1

몽양 여운형 전집. 2

정병준 <몽양여운형평전>

김동석 <예술과 생활>

윤곤강 <지렁이의 노래>

송남헌 <해방3년사>

함석헌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정경모 <찢겨진 산하>

, 기타 등등

- 2016. 6. 13

[단독]'천황폐하 만세' 정부 연구센터장 녹취록.."송구스러워"
1“신채호는 네 자로 말하면 정신병자이고, 세 자로 말하면 ‘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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