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위대한 민주주의자(이기형)
몽양살림이 2007-12-26

몽양이 민주주의자라는데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날에는 삼척동자도 민주주의라는 말을 쓰고 이야기합니다.
1945년 해방 직후에는 민주주의라는 말을 쓰고 이야기합니다.
1945년 해방 직후에는 민주주의라는 말은 상당히 낯선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8.15전에 이미 몽양 선생은 민주주의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리고 민주주의적 행동을 많이 했습니다. 노예를 해방시킨다든가, 종의 아들, 상민의 아들을 동정하고 만인은 평등하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 몽양 여운형입니다.

그리고 몽양 선생이 성장해서 민주주의자임을 증명해 준 일이 있습니다.
1947년에 4월에 몽양 선생은 대구 달성공원에 가셔서 강연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미국 영사 랭던이 긴급한 일이 있으니 급히 서울로 올라와 달라는 전보를 쳤습니다.  그래서 서울로 올라왔더니  인도에서 아시아 약소민족대회가 열리는데 몽양 선생이 한국 대표로 가주셔야 되겠다고 요청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몽양 선생이 당수로 있는 조선인민당에서는 몽양 여운형이 인도로 가서는 안 된다는 당적 결정을 내렸습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이럴 때 십중팔구 자신이 당수로 있는 당에서 어찌 자신의 앞길을 막느냐며 당적 결정을 무시하고 박차고 떠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몽양 선생은 자신이 인도에 가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 개인을 위해서, 조선 인민당을 위해서, 통일을 위해서 상당히 유력한데도 불구하고 고민 끝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이것은 몽양 여운형 선생이 가지고 있는 위대한 민주주의 정신의 발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몽양 선생이 위대한 지도자라는 칭송은 외국 기자들한테도 많이 들었습니다. 1946년 4월말에 미국 AP, UPI기자와 <뉴욕 타임즈> 기자 등 4인의 기자가 한국에 왔습니다. 이 사람들이 박헌영은 만나주지 않아 만나지 못하고 김구 선생 등 다른 많은 사람들을 만난 후 몽양 선생을 만났습니다.
기자들이 대번에 질문하기를,
"세상에서는 공산주의자라는데, 대답이 뭐요?"
이에 몽양 선생이 대답하기를,
"당신 손문을 아오?"
기자들이 안다고 하자 이번에는.
"손문이 공산주의자요, 아니요?"
기자들이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몽양 선생은 "나도 조선에 있어서 손문과 같은 노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요"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얘기를 중심으로 해서 많은 얘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미국 기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니까 정세판단 등 몽양의 말이 구구절절이 다 옳으므로 위대한 민주주의자라고 탄성을 질렀다고 합니다. 본국에다가 송고했습니다.
그 다음날 신문에서는 전부 <조선에 있어서의 위대한 민주주의자>라는 제목으로서 신문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것 역시 몽양이 위대한 민주주의자라는 것이 세계적으로 증명된 사실이 아닐까 합니다.
                                                                                                     
                                                                                                             - 이기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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