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에게 듣는 교회사 이야기 8' 중에서1(곽성혜)
몽양살림이 2007-12-26

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꼭 알아야 할 것은 그렇게 많지가 않아. 삶의 본질은 복잡한 게 아니거든. 본질 하나만 잘 붙들고 살면 세상이 아무리 흔들려도 ‘나’까지 흔들릴 일은 없는 거야. 그렇지만, 조금 외롭긴 하겠지. 예수가 그러셨듯이, 본질을 본 사람은 원래 외로운 법이니까.

기독교와의 만남
상동교회. 내가 그 곳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던 건 1907년, 내 나이 스무 살 때였어. 그 때 그 곳엔 참으로 훌륭한 분들이 많았지. 묵묵한 형님 같던 전덕기 목사와 큰 스승이었던 이상재 선생, 이동녕, 이회영 같은 거목들도 그 곳에서 만났던 거야.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끝내 기독교인이 되지 않았을지도 몰라. 나는 세상을 뒤엎을 수 있는 신문물과 개화사상이 필요했을 뿐, 종교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구국운동을 위해서 만났던 상동교회 동지들은 내게 기독교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더군. 물론 그들이 애써 가르쳐 주었던 건 아니야. 그들의 남다른 열정과 차원 높은 세계관을 보면서 나 스스로 알아갔던 거지. 기독교에 대해 알고 나서, 나는 제일 먼저 집안에 모셔져 있던 신주들을 몽땅 땅 속에 묻어버리고, 종들이 보는 앞에서 종문서를 불살라 버렸어. 왜냐하면, 기독교는 해방의 종교였으니까.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20).”

나는 예수를 만났던 거지. 이웃의 소작농에 가서 밥을 얻어먹었다고 아버지께 불호령을 맞던 내가, 나와 함께 놀아준 머슴에게 곤장을 내리는 아버지 밑에서 울분을 토하던 내가, 그 종들과 천민들에게 자유를 선포하라는 예수를 만났던 거야. 그걸로 끝이었지. 내게 더 필요한 게 뭐가 있었겠어. 억눌린 종이 풀려나야 하듯이 억눌린 민족도 해방돼야 하고, 종국에는 모든 인종과 개개인이 평등과 평화를 누려야 한다는 것. 그 삶의 진리를 만났는데 말야.

사회주의자? 민족주의자? 기독교인?
사람들은 나보고 사회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하고 더러는 민족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해. 또 기독교인이니 아니니 시비가 붙기도 하지. 글쎄. 나에게 묻는다면 난 할 말이 없어. 난 맑스의 이론에서 예수를 만나고 우리 민족이 해방되는 것에서 세계평화의 단초를 발견하는 것 뿐이니까. 그리고 기독교인이냐는 질문? 그건, ‘기독교인이 무엇이냐’는 문제부터 풀어야겠지. 나에게 평양신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해줬던 승동교회 클라크 선교사는 장로교 울타리 이외의 것은 모두 이단시했어. 또 ‘교회당 일에 전념하는 것’만이 올바른 신앙이라고 내게 가르쳤지. 그의 시선으로 보자면 나는 기독교인이 아닐 거야. 나는 특정 교단 교파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벌거벗은 나사렛 예수’의 고난에 동참할 생각은 않고 교회당 안에만 갇혀 있는 신앙에도 별 흥미가 없으니까.

내가 상해로 건너간 지 7년쯤 됐을 때던가? 1920년 무렵이었을 거야. 우연히 본국에서 날아온 동아일보 신문 한 조각을 얻어보게 됐지. 그리운 이상재 선생의 글이 실려 있더군. 내용인 즉, 경상북도 영주 땅에 사는 한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이 예수교인이 되면서 조상 제사 일체를 엄금하자 부인이 자살을 했다는 거야. 남편이 저지르는 불효의 죄를 갚기 위해서 말야. 그러니까 이 일을 두고 이상재 선생이, “종교상에도 조선혼을 물실(勿失)하라. 미신이 아닌 이상 부모의 제사 지냄이 무엇이 그르랴. 아무리 생각해도 예수의 참 가르침을 알지 못하는 사람의 일이다”라고 신문에 기고를 한 거지. 바로 이런 게 아닌가 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해서 기독교인이 아니다 하면 나도 기독교인이 되고 싶지 않고, ‘하나님 나라와 그 의(義)’를 실현하는 게 기독교다 하면 나는 기독교인이 되고 싶어.

내가 기독교를 종교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사회주의 안에 있으면서도 민족운동을 최우선으로 삼을 수 있었던 건 바로 이런 이유야. 맑스 이론에서 인민해방의 빛을 보았고, 그 인민해방은 민족 해방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 이 모든 것이 ‘해방의 복음’ 기독교 안에 있다는 점이지. 그렇기 때문에 나를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어. 나를 사회주의자라고 부른다고 해서 내가 사회주의자가 되거나, 나를 기독교 배교자라 부른다고 해서 내가 배교자가 되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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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에게 듣는 교회사 이야기 8' 중에서2(곽성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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