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양 평가(윌리엄 랭던)
몽양살림이 2007-12-26

"몽양이 비명에 숨졌을 때 내가 기억하는 모든 말과 행동을 종합하고 분석함으로써 도달한 결론은, 몽양이 개인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이들 미소 양국에 대해 절대적으로 중립적이었으며, 그가 갖고 있던 유일한 목적은 미소 양국으로 하여금 가급적 빨리 한국으로부터 물러가게 하는 일이었다." 
                                                                     -윌리엄 랭던 미소공동위원회 미국측 대표-

양 여운형(夢陽 呂運亨 : 1886∼1947)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논란의 대상이 되는 정치가이자 독립운동가이다. 그의 직함과 경력은 그 누구보다 화려했다. 상해 임시정부의 외무차장, 일본제국의회에서 조선 독립을 일갈한 식민지의 청년 애국자,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의 특별당원, 레닌·트로츠키·손문과 한국 독립운동을 논의했던 좌파 지식인,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의 일장기 말소사건을 처음 주도한 <조선중앙일보>의 사장이자 조선체육회 회장, 해방공간을 뜨겁게 달군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위원장, 좌우합작 운동의 선봉, 남북연대·연합을 위해 38선을 5차례나 넘나든 최초의 정치인, 그리고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은 테러를 당한 희생자.

그러나 민족주의자에서부터 자유주의자, 민족적 사회주의자, 좌경적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에 이르기까지 그에 대한 평가는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다. 심지어 북한에서는, 여운형이 '태양을 꿈꾸며(몽양)' 라는 호를 붙인 게 김일성 '장군'이라는 태양을 흠모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정도다. 실상 그의 호는 어머니가 태양을 품는 태몽을 꾸었기에 붙여진 것이었다.


나무를 자를 수 없는 은도끼

해방정국에서 여운형에 대한 훼예와 포폄 역시 극단적이었다. 자주적 통일·독립국가 건설을 향한 여운형의 질주는 대중들의 예찬과 추종을 이끌어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최악의 비난과 질시를 자아낸다. 해방 직후 여운형에게 큰절을 했던 조선공산당의 박헌영은 여운형을 미군정의 주구가 된 야심가라고 비난했고, 거꾸로 극우세력들은 여운형이 조선공산당의 허수아비라고 주장했다. 좌익세력의 지도자였지만 한편으로는 우익세력과 좌우합작을 추진했고, 미군정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었다.

주한 미군사령관 하지가 여운형을 만났을 때 던진 첫 마디는 "일본놈에게 돈을 얼마나 받아먹었지?"였다. 미군정은 여운형을 미군정의 자문기구에 참가시키려고 여러 차례 회유와 협박, 뒷조사를 병행하고 공작정치도 서슴지 않았다. 한때 미군정은 일본에 장교를 파견해 전 조선총독부 고관들로부터 여운형의 친일과 자금수수에 관한 존재하지도 않은 증거를 수집하려 혈안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 미소공위 미국측 대표는 여운형을 미군정 자문기구에 끌어들이기 위해 권력을 주겠다고 제안하며 '미군정의 주구'가 되는 것이 손해가 아니라고 회유하기까지 했다. 미군정은 때론 여운형을 합리적이고 대중의 인기를 몰고 다니는 지도자라고 했다가, 때론 좌익 괴뢰극을 연출하는 사기꾼이자 기회주의자라고 몰아붙였다.

소군정도 한때 여운형을 미소공위로 수립될 임시정부의 수상후보로 내정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가 미군정의 장기말일지 모른다는 의심을 떨치지 못했다. 또한 여운형과 5차례 이상 만났던 김일성 역시 민족통일전선 결성에서 여운형의 위치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그가 미군정의 품으로 날아갈지 모른다고 조바심을 내곤 했다.

도대체 여운형은 어떤 인물인가? 미군정은 해방정국의 한국 지도자들에게 여러 가지 별명을 붙였는데, 정치적으로 심약하고 육체적으로 병약했던 김규식은 그의 영문 이름을 빗대 '병약한 김규식(Kim Kyu Sickly)'으로 안두희의 말마따나 통제할 수 없는 민족주의 성향을 지닌 김구는 '흉악한 호랑이(Black Tiger)'로, 여운형은 '은도끼(Silvwe Ax)'로 불렀다. 겉으론 번드르하고 윤기가 나지만 은도끼로 나무를 자를 수 없듯이, 여운형도 언뜻
홍동근,「조선기독교의 사회주의 크리스천들」
'역사인물에게 듣는 교회사 이야기 8' 중에서2(곽성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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