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선각적인 지도자<세대 1964. 9 >이환의
몽양살림이 2007-12-26

역설적일는지 모르지만 일제말기에서부터 해방 후 정치암흑시기를 거쳐 민국수립이 되기까지 한국 최근세 정치사상 민족의 진로에 가장 선각적인 지도자를 뽑는다면 역시 몽양이 제일인자가 아닌가 싶다.
해방 후 건준과 조선인민공화국 수립과정에서 몽양이 취한 정치포석과 정당활동의 방향 등을 보면 미소의 조선분할 정책에 대한 정세판단을 하는데 있어 중대오판을 한 실책도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몽양이 지향한 민족진로의 근본방치만은 친일파에 포위된 상해 임정파와 미군정을 배경으로 한 구미파들의 신식민주두의적 진로보다는 얼마나 자주적이고 선각적이었는가를 알 수 있다.

해방을 맞이하는 자세에 있어서도 중국상해에 있었던 임정파나, 미주에 있었던  친미적 망명객들보다, 직접 국내에서 지하운동을 해온 몽양의 투쟁관록은 민족지도자의 자질면에서 높이 평가해야 할 면이 있다.
일본이 패전을 선포하기 1년 전부터 대전(大戰)의 추이를 내다보고 이에 대비하는 독립운동응ㄹ 전개하기 위해 1944년 8월 10일 몽양은 서울 경운정의 현우현씨 집에 동지 10여명을 소집하여 독립쟁취를 위한 비밀결사로서 조선건국동맹을 조직했으니, 이 건국동맹이 해방과 더불어 국내에 남아있던 유일한 독립운동단체로서 햇빛을 보게 되었고 그것이 건국준비위원회의 단체가 되어 마침내 건준은 일인으로부터 정권을 물려받은 후 최초의 정부인 조선인민공화국을 수립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건준과 조선인민공화국은 좌경적 색채가 농후하다하여 건준 내에 있던 극소수의 우익지도자들로부터 배반분리를 당하고, 곧 이어 남한에 진주한 미군정에 해체당함으로써 빛을 못 냈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선각자 여운형씨는 미리 계획된 우익테러단의 흉탄에 맞아 그의 폭넓은 경륜과 전진적인 혁명이념을 미처 펴보기도 전에 한줌의 재로 사라지고  만 것이다.

<세대 1964. 9 >이환의

* 이환의 : 1931년 전남출신, 언론이, 1960년 이후 경향신문 기자, 정치부장을 거쳐 전남일보 
              논설위원,  KBS해설위원, 문화방송, 경향신문 사장 등을 역임했다.
(서울신문, 1945년 12월 25일 )-몽양
노나매기 인간 몽양 여운형(백기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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