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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양이 남긴 글

제목 나의 회상기
작성자 몽양사랑지기
작성일자 2020-08-19




"여행은 나의 가장 사랑하는 취미이며 오락이다. 세상에서는 스포츠를 나의 가장 좋아하는 취미로  아는 모양이나 나는 스포츠보다도 훨씨 더 여행을 사랑한다. 아니 여행이야말로 가장 종합적인, 가장 건전하고 인간적인 스포츠일 것이다.
'만약 인류가 그들의 영구한 역사를 통해 꿈꾸고 열망하고 또 그를 위하여 찬탄하고 눈물지어오는 저 유토피아의 실현을 획득하는 날이 온다면 그때의 인간생활의 가장 뚜렷하고 특징적인 조건은 만인이 다같이 제한없는 여행의 자유를 가지고 있는 점일 것'이라고 말한 저 웰쓰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나는 여행의 애호가이며 예찬자이다."


몽양 선생의 여행관입니다. 이처럼 몽양은 여행을 즐기고 사랑하였습니다. 그의 활동공간을 보면 국내만 해도 서울 양평 강릉 평양 대구 등지를 무대로 활동하였고 중국에서는 남경과 상해 천진 등 전역을 누볐으며, 1929년에는 상해복단대학의 축구팀을 이끌고 동남아 여러 나라를 방문하기도 하였습니다.
몽양은 가는 곳마다 지기들로부터 환영을 받았고, 무엇보다도 여행의 느낌과 경험을 기행문으로 남겼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1936년 3월~7월 <조선중앙일보>의 자매지인 <중앙>에 실렸던 기행문은 몽고의 고비사막을 넘어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시베리아와 북만주를 거쳐 다시 상해로 돌아오는 웅장한 여정을 실감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본래 몽양이 계획했던 여정은 천진에서 봉천을 거쳐 시베리아로 들어가는 것이었지만, 일제의 밀정 때문에 북경에서 장가구 그리고 고비사막을 거쳐 울란바토르를 통과하는 여행계획을 세워 놓았습니다.
이 여행의 기행문들은 오늘날 읽어보아도 웅장한 느낌을 듭니다.

 

                           

                                    
                                     
나의 회상기


  1.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는다. 상념의 촉수(觸手)는 지나간 생애의 추억과 회상의 실마리를 붙잡아 마치 주마등처럼 가지가지의 형상과 장면이 때로는 뽀얗게 흐려져 아득하게, 때로는 눈앞에 일어나고 있는 사실이나만큼 번듯하고 명료하게 나타나고 사라져간다.
그리하여 바쁘게 전개되고 사라져가는 이 회상의 흐름이 이제는 지나간 옛날의 나의 생활 그 기쁨과 설움 그 감격과 차탄(嗟歎 - 한숨지어 탄식함)의 자욱한 자취를 마치 그리운 환영처럼 상념의 눈앞에 펼쳐놓을때에 이 [팬톰]을 의식하고 있는 나의 의식과 정념은 알지못하는 사이에 먼 과거의 세계로 이끌려간다.
그리하여 이제는 벌써 사라지고만 그리고 앞으로도 아마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그 무엇에 대한 아픈 사모와 애도의 정서가 안타깝게도 가슴을 누른다. 이러할 때에 나의 혼에는 일순간 열정의 불이 타오른다. 진실로 젊고 날씬한 어린 버드나무가지와 같이 생명에 충일한 청년적 기백과 열정이 나의 마음을 잡아흔든다.
그러나 때로는 이러한 젊은 열정의 충동 대신에 정적(靜寂)하고 침착한 관조자의 보드라운 안식에 편안히 숨쉬이면서 지나간 생활의 기록을 한페이지 한페이지 재처놓기도 한다.
 
이제 여기에 쓰이는 [나의 회상]은 이렇게 나의 상념의 시야를 흘러져 가는 추억과 회상을 아무런 왜곡도 없이 그려보려는 한개의 시험이다. 나는 아무런 의식적 구성도 가하지 않고 다만 생각에 떠오르는 대로의 회상과 추억의 충실한 기록자가 되기를 원한다.



 2.
그러나 나의 생애의 과거가 이제 나의 상념의 세계로 보내여주는 추억과 회상의 흐름은 너무나 황량하고 적막하다. 이 단조하고 우울한 회색의 흐름을 밝게 하여줄 아무런 꽃다운 빛도 찬란한 광채도 없다. 그리하여 마치 황혼의 모색이 그림자를 던지고 있는 쓸쓸한 폐허나 바라보는 듯이 나는 나의 눈앞을 흘러가는 지나간 생활의 기억을 바라본다. 기쁨과 유락의 자취는 그곳에 없고 다만 곤란한 사명과 의무에 충실하려는 끊임없는 초조와 우려의 연속을 발견할 따름이다.
이땅에 생을 타고난 젊은이에 누구에게나 이땅의 XX운명이 한가지로 부과하는 곤란하고도 준엄한 그러나 또한 생명을 바치기도 오히려 아깝지 않은 XXXXXXX 한번 젊은 나의 가슴에 영원히 끌 수 없는 불을 부쳤을때에 벌써 이땅의 양심있는 민중의 운명인 험난한 가시덤불의 길은 나의 전생애의 방향과 운명을 결정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래 이십여 성상의 세월은 마치 한날같이 이 최초의 열정과 희망의 실현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속에 지나갔다.
 
만일 나의 이러한 단조하고 유락없는 과거의 생활에도 기쁨과 미소와 함께 상기(想起)할 만한 추억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이 생활의 피할 수 없는 필요에서 수행된 헤아릴수도 없을만큼 빈번하였던 가지가지의 여행에 대한 회상일 것이다.
실로 여행에 관한 추억이야말로 황량한 광야의 이곳 저곳에 점철되어 있는 꽃밭이나 처럼 나의 지나간 생애의 색채없는 벌판을 장식하여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추억의 실마리를 풀기 시작할 때에 항상 나의 이마에 모여지는 침울과 우수의 구름은 지나간 여행의 기억이 한번 머리속에 떠오를 때에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아직도 젊고 청신한 유락의 미풍이 빰을 스쳐주는 것을 느낀다.
눈을 감는다. 마치 바다속이나 들여다 보는 듯이 맑고 새파란 남양의 하늘, 눈이 부실 듯이 내려쪼이는 백열한 태양의 광선, 야자수 그늘을 산들산들 불어가는 가벼운 양풍에 이마의 땀을 식히면서 벤치위에 타는 열정을 진정하고 있는 젊은 선진자의 그림자가 떠오른다.
우울한 회색하늘 그아래 전개된 망막한 광야의 위안없는 풍경을 차창밖에 바라보면서 저으기 가슴속을 배회하는 향수의 설움에 말없이 탄식하는 젊은 망명객의 침울한 면영(面影)이 눈앞을 지나간다. 어느 것이나 다 지나간 시대의 내 자신의 그림자이다!   


3.
여행의 추억도 즐거우나 여행 그것은 더욱 한층 즐거운 것이다. 사람은 기쁨을 가지고서 당한일만을 진실한 기쁨으로써 회상 할 수 있는 것이다. 여행의 추억이 오는 나에게 다시없는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원천이 되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일찍이 그 여행을 진실한 마음속으로부터 유락으로서 경험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은 나의 가장 사랑하는 취미이며 오락이다. 세상에서는 스포츠를 나의 가장 좋아하는 취미로 생각하는 모양이나 나는 스포츠보다도 훨씬 더 여행을 사랑한다. 아니 여행이야말로 가장 종합적인 가장 건전하고 인간적인 스포츠일 것이다.
만일 인류가 장래하는 시간의 어느 일점에서 그들의 영구한 역사를 통하여 꿈꾸고 열망하고 또 그를 위하여 차탄하고 눈물지워오는 저 유토피아의 실현을 획득하는 날이 온다면 그때의 인간생활의 가장 뚜렷하고 특징적인 조건은 만인이 다같이 제한없는 여행의 자유를 가지고 있는 점일 것이라고 말한 저 [웰쓰]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나는 여행의 애호가이며 예찬자이다.
 
아득한 옛 시대에 이미 우리의 조상들이 지내온 저 유목민 생활의 동경과 희구가 아직도 우리의 혈관 속에 따듯한 피가 되어 흐르고 있는 것 같다. 저 주된 문명생활이 일전한 규모에의 고착과 권위에의 복종이라는 멍에로 인류를 얽어매인 수십여 세기의 훈련도 지나간 먼 시대의 이 방랑자의 노래를 인간의 가슴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리기 전에는 아직 모자란 모양이다.
그리하여 조직된 문명의 세계에 이 조직과 떨어질 수 없이 서로 맺어저서 생활하면서도 우리는 가끔 우리의 혼을 뿌리로부터 잡아 흔드는 맹렬한 열망 어디인지 모르나 먼곳 지금 살고 있지 않은 아주 다른 곳으로 떠나가고 싶은 억제 할 수 없는 저 열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동경과 정열이 나로 하여금 그렇듯이 여행을 사랑하고 즐겨하게 만들어 준다. 그러나 현재 자기를 에워싸고 있는 생활 환경을 일시나마 떠나고 싶어하는 이 여행에의 사모를 만일 한 개의 위험한 정서인간에게서 조직성과 현실에의 충실성을 거세해 버리려는 좋지 못한 경향으로만 인정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너무도 인간생활의 다양한 발전성과 풍부한 굴신성에 무지한 사람일 것이다.
여행의 정념에야 말로 인간적 교훈과 교양의 무한히 풍부한 원천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여행은 가장 전체적이며 근본적인 인간 교양의 방법일 것이다. 그것은 인간에게 필요한 온갖 가르침을 공허하고 간조무미한 문자의 나열에서는 구할 수도 없는 생기와 흥미로써 우리의 정신 속에 주입하여준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행이 우리에게 이상과 동경에의 허구를 가르켜주는 점이다 . 우리를 얽매이고 있는 밉살스러운 현실의 생활 조건을 떠나볼 때에 우리의 해방된 이지와 정서는 일충 대담해지고 아무거리낌도 없이 우리에게 젊은 꿈을 불타는 희망을 가리켜준다. 현재 가지고 있는 생활에의 경멸과 장차 가질 수 있는 그것에의 대담스러운 희망의 불로써 우리의 걸핏하면 어두워지려는 마음을 환하게 비초여준다.


4.
나는 비교적 일찍 집을 떠났다. 열네살 적에 벌써 아버지의 집을 떠났던 것이다. 그후 다시 짧은 시간을 가정에 돌아가 있었을 때에도 나는 항상 현실의 조그마한 집안 일에 매여 달려 있으려는 소극적이고 타협적인 아버님을 위하여 좋은 아들이 될 수는 없었다.
그 보다도 남아의 의기와 기개를 고취하기에 게을리지 않는 어머니와 뜻이 맞았으며 항상 무릎 위에 나를 안고서 중원의 천하를 논하고 중국에의 길을 가리켜 주시는 불우의 혁신가인 조부의 감화가 나를 많이 지배하였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청소년시대를 그 속에서 보낸 십구세기 말엽의 조선의 정세는 더욱이나 나의 성장하는 정신을 강렬하게 자극하였던 것이다.
나날이 쇠망하여가는 조토(祖土)의 암담한 형세와 다만 개인적 영달이외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이 공연히 국민의 지도권을 붙잡고 있는 당시의 부패한 정치가에 대한 불평과 분노는 일찍부터 나의 마음속에 외국에의 동경을 씨뿌려주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외국을 생각하게 될 때마다 나의 머리에 떠오르는 국토는 중국이었었다.
어렸을 적부터 자나깨나 귀에 익숙해온 저 중원의 땅, 조부의 주름잡힌 손가락이 지도 위에 몇번이나 그어지던 그 땅에의 길 그것이 나의 마음을 희망과 기대에 높이 고동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때가 이르러 허물어져가는 고토의 생활을 일단 버리고 해외에로 나의 새로운 생활의 출발을 구하게 되었을 때에 나는 서슴지 않고 중국을 택하였던 것이다. 나는 스물 일곱살이었다.

그후 마침내 나의 의사에 반하여 자유를 잃은 몸으로 다시금 고토에 발을 놓기에 이르기까지 이 십여성상을 나는 한 개의 나그네 '영원히 방황하는 유태인'이었었다. 이리하여 이제 나의 회상의 팬을 들을 때에 우선 나의 추억과 회상의 전경에 떠오르는 것이 여행임을 나의 생활의 필연성이 결정하여주는 가장 자연스러운 순서일 것이다.
이제 지구의 한모퉁이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쏘비에트 러시아는 인류생활의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려고 대담한 실험을 하여나가는 중, 이제는 어떠한 권력도 그를 침범할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그 무한한 발전성과 풍부한 약속과 희망에도 불구하고 그 때에 그것은 아직도 어렸으며 개척을 요구하는 처녀지였다.
나는 이제 그렇게도 나의 젊은 열정과 성심을 기울이면서 바라고 빌던 이 처녀지의 발전과 성장이 가장 유감없이 완전히 성취되어 가는 것을 눈앞에 보면서 무량한 감개와 함께 이 땅이 아직 황량하였으며 근심스러웠을 그 때에 이땅을 처음으로 찾아가던 그리운 회상의 여행을 써 보려고 한다.



1. 떠나게 되기까지


大正十年(1921년)늦은 가을 나는 상해에서 머지 않아 붉은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서 열리게 된 원동 피압박민족 대표자대회의 준비에 망살되고 있었다. 이 대회는 푸로레타리아트의 운동과 약소 민족의 운동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키기 위한 제 3 인터내셔날의  실천적 사업의 하나로써 이미 개최되었던 근동 피압박 민족대회의 계속이며 후계이었을 뿐만 아니라, 때를 같이하여 아메리카의 수도에서 열리게 된 저 소위 워싱톤 회의 곧 세계대전을 통하여 강탈한 수획의 분할을 중심으로 하여, 제국주의 국가관에 이러한 알력과 모순을 난화시키고 전리품의 분배를 다시한번 고찰해보려는, 자본주의 국가의 회합에 대항하는 새로운 의미와 사명을 띠우게 된 극동의 피압박 약소민족의 소임이었었다.

나는  ** 일본 중국 몽고 자바 등 이 대회에 참가할 극동 피압박 각국대표들을 위하여 여권의 수속 기타의 모든 주선의 사명을 맡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들의 동지들을 차례차례로 다 출발시켜 보내고 나서 마지막으로 상해를 떠나 만주 경유로 러시아에의 잠입을 계획하고서 마치매 천진에 도착한 것은 11월 초였다. 그리하여 즉시 여행의 모든 준비를 갖춘 다음 천진을 떠나서 몇시간도 되기도 전에 나는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 중국 옷을 입은 어떠한 조선사람이 유심스러이 나를 바라다보기도 하고 내가 앉아 있는 앞을 공연히 갔다 왔다 하기도 하다가 나중에는 조선말로 나에게 수작을 걸기까지 하게  되었다. 물론 나는 중국인으로 변장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하는 조선말 인사를 모르는 체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런즉 얼마 안 있어 이번에는 다른 차간에서 양복쟁이 하나이 들어와서 아까 나에게 수작을 걸던 작자와 수군거리기도 하며 나를 바라보기도 하였다. 벌써 의아하고 주저할 필요는 없었다. 확실히 밀정이었다.
기차가 산해관만 지나서 그들의 세력범주인 만주만 들어서기만 하면 일각의 여유도 없이 그들의 손은 나의 덜미를 잡을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충분히 고려한 다음 마침내 천진서 머지않은 거리에 있는 탕산에서 차를 내리고 말았다.
이리하여 최초의 출발을 도중에 중지한 나는 천진에 돌아와서 사흘을 지난 후 다시 고쳐 봉천행의 기차를 타게 되었다. 먼저번 경험이 있었으므로 이번에는 일등차실을 이용하여 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무효였다. 다시 먼저번의 그 이상한 사나이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그 역시 말쑥한 중국신사로 차리고서 일등실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나는 두서너 정거장도 못 가서 주저할 것 없이 다시 차를 내리고 말았다. 그 후 주의하여 매일 천진역에 나가서 보니 거진 매일과 같이 이 괴상한 인물이 정거장을 배회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 틀림없는 사냥군 인간의 사냥군 스파이였다.

이 두 번째의 실패는 나로 하여금 완전히 예정한 경로를 포기하게 하고 말았다.  코스를 바꾸어 서 달리 길을 취하지 않고는 여행의 목적은 도저히 달해질 것 같지 않았다. 이리하여 마지막으로 나는 가장 험난한 코스 곧 북경서 장가구(張家口)로 가서 거기서 몽고를 뚫어 러시아로 가는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 길은 교통상의 곤란이 큰 대신에 스파이의 위험은 비교적 적었다. 나는 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하여 장가구에 이르러 그 곳에서 몽고 상사회사를 경영하고 있던 콜맨이라는 미국인의 자동차를 세낸 다음 십일월 하순경에야 겨우 동지들이 기다리는 모스코바로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이 글과 이하 4편의 글은 1936년 3월에서  7월에서 잡지 <중앙>에 실린 것으로서 몽양이 원동 피압박민족대표자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1921년 상해를 출발하여 1922년 1월 중순 시베리아 횡단철도 편으로 모스크바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을 그리고 있음.)
                                                                                                     

 <중앙, 1936, 3>
 
 
몽양사랑지기기 주 ;  원문대로 표기했으며, xxx로 표기된 것은 책에서 읽을 수 없는 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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