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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양이 남긴 글

제목 나의 회상기 제 2편 - 몽고사막 횡단기
작성자 몽양사랑지기
작성일자 2020-08-21
                                    


             몽고사막 횡단기

                         
- 나의 회상기 제 2편

 

 

 준비
 

몽고 경유 모스크바 행의 여정을 앞에 두고서 나는 장가구에 5일간을 머물렀다. 같이 떠나게 되어 있던 중국상인들의 준비를 기다릴 필요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하여서도 각가지의 준비가 이 여행에는 요구되었던 것이다.
 당시의 외몽고 일대는 여행자를 위하여 가장 곤란한 상태에 있었다. 볼쉬비­키의 붉은 세력 앞에 쫓겨 나온 러시아 제정파의 거두 「웅젠」남작의 이만여 반혁명군이 외몽 일대를 전야로 하야 완강한 반항전을 일개월 이상이나 계속하다가 마침내 전멸된 바로 직후였으며 또 외몽 자체로서도 재래의 중국에 대한 낡은 예속관계를 파기하야 독립자주를 선언하고 외몽의 수도 고륜에 있던 중국의 지배관료를 모조리 내쫓은 뒤였으므로 중국 변경과 외몽고의 일대는 마치 무정부상태에 빠진 것 같아 혼란과 무질서가 지배하고 있었으며 마적단의 출몰은 여객의 안전한 통행을 위협하야 약 3개월 동안이나 중국 외몽고간의 교통은 두절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일행의 출발은 이 위험지대 돌파의 첫 시험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원래 우리가 떠나려는 외몽고의 길에는 보통 밤이 오면 그대로 한천에서 잠을 자고서 여행을 계속하는 카라반이외의 특별한 행정적 사명을 띄고서 여행하는 중국의 관료계급을 위하여 적당한 지점마다 일정한 숙사의 설비가 있었던 것인데 우리가 떠날 그때에는 벌써 이러한 평화시의 시설은 그림자도 없었다. 역시 밤이오면 야천에 노영을 해가면서 여행을 계속해야 할 형편이었다. 이러한 관계를 고려하고서 내가 준비한 여행의 필수품은 대개 아래와 같은 것이었다.
 털내의, 가죽옷, 낙타털로 안밭친 장화 깃털이 그대로 붙어있는 늙은 양가죽으로 만든 방한모자 털가죽 제조의 장외투, 털가죽으로 가장자리를 싼 세르로이드 안경 늙은 양의 털가죽으로 만든 자루이불―이러한 것들이 대개 내가 준비한 방한구였었다.

벌써 늦은 가을이 다 가고 북지나 일대에 엄혹한 겨울이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기 시작한 때였다. 닥쳐 오는 엄한을 눈앞에 두고 노천 야영의 만리여정을 떠나려는 자의 관심과 우려의 집중되는 초점은 무엇보다도 위선 방한구의 준비였던 것이다.
 방한구 다음에는 식료품 준비가 문제였다. 오랜 여행기를 통하여 부패하지 않을 음식을 그러면서도 여중의 피로를 회복하고 원기를 보존하기에 충분할 만큼 영양가치가 풍부한 음식물이어야 할 것이었다. 위선 중국식 「만두」와 서양식 「빵」을 주식물로 구하여 놓고 부식물로는 통째 삶아 오랜 저장에 견딜만하게 해놓은 닭 서너마리 시베리아식 오이지, 비스켓트, 초콜레이트 등 또 음료로는 커피차 두서너 수통, 우유 몇 통, 그리고 음료라느니 보담도 악용으로 「위스키」 한 병― 것이 식량품의 거진 전부였다. 음식물의 필요는 아주 최소한도의 불가결한 범위에 국한하였던 것이다.
 
이리하야 입을 것과 먹을 것은 그럭저럭 거진 준비되었으나 먹고 입는 것뿐이라면 그것은 철도와 기선을 이용할 수 있는 문명 세계의 관광여행에도 요구되는 보통의 조건일 것이다. 이외에 다시 한가지 조건이 피할 수 없이 요구되었다. 그것은 험란한 전도를 앞세우고서 이길 수 없는 생명의 위험에 갖추기 위한 몇 가지 보신용 무기의 준비였다. 피스톨 기병용 소총 예리한 비수 등이 그것이었다. 이외에 밤의 어둠에 갖추기 위한 양초 몇 자루를 더 넣으면 장가구 출발에 당하여 내가 준비한 일체의 비품목록은 완성될 것이다. 이밖에 자동차의 각종 부속품과 「깨솔린」 등을 자동차 책임자인 외몽 상사회사의 「코-ㄹ맨」씨가 누락없이 준비하였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출발


리하야 각반의 준비도 완성되고 동행의 중국상인들도 모두 한곳에 모여 마침내 5일간의 체류에 정들었던 장가구 시가에 이별의 말을 던지고, 외몽고 벌판의 망막한 사막을 향하여 만리원정의 길을 떠난 것은 벌서 영하 10도 이하의 추위가 북중국 일대에 몰려온 11월 하순의 어느 오후였다.
벌써 중천을 지나 서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한 태양은 우울한 초겨울 하늘 회색구름 속에 흐려졌는데 우리 일행을 실은 3대의 자동차는 서로 전후하여 허물어진 성문을 나서니 멀리 망막히 보이는 누른 들판에는 눈 닿는 곳 어느 때나 누른 나무 그림자 하나없이 이미 황량한 사막에나 들어선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자동차 바퀴바람에 휘날리는 황진 사이로 보이는 것은 아무런 변화도 없이 무한히 전개되어 있는 잠자는 듯이 흐릿하고 생기없는 벌판뿐이었다. 이곳 저곳에 가끔 나타나고 사라져 가는 나즈막한 구릉은 그 흐릿한 서토색과 그 너무나 나직하고 유순한 곡선으로 이 망막한 평원에 변화와 활기를 주는 대신에 오히려 이 벌판의 특색인 무감각한 침울과 단조를 더 한층 강조하여 줄 따름이었다.

멀리 장가구의 시가를 싸고 있는 낡은 성터가 아득한 지평선 저쪽 시야밖에 희미하게 사라져가고 일별무애의 광야에 한참 동안이나 황진을 휘날리며 질주하더니 자동차는 아지 못하는 사이에 저윽히 구배진 경사를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우리의 제 1의 목적지 외몽의 수도이며 중심도시안 고륜에의 길에 가로누워있는 유명한 고비사막의 고원지대가 이제야 그 한복판을 우리의 차륜아래 가로 놓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묵묵히 보드라운 자동차 쿠션에 허리를 깊게 파 무고서 비스듬히 앉아 뒤으로 뒤으로 날라가는 황야의 풍경에 한참 동안이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변화없는 단조한 풍경은 가슴에 육박하는 그 거대하고 부착할 수 없는 인상에도 불구하고 오래지 않아 나의 시각을 피로하게 하고 말았다. 흐릿한 황토색의 망막한 벌판 평범하게 기복한 구릉의 나즉한 곡선 이외에는 나의 시각의 흥미와 주의를 포착할 만한 아무런 변화도 아타나주지 않았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나의 두눈은 스스로 감겨지고 흥미와 관심의 촉수는 어느 듯 상념의 세계를 더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기대가 하도 많은 대망의 여행 그것도 출발의 첫날이다. 유쾌롭게 흥분된 나의 뇌리를 마치 주마등처럼 가지가지의 상념이 달음질치고 지나가, 시간 가는 것도 모르고 자동차 밖에 전개되는 대륙풍경의 변화에도 일체 무관심한 중에 어느 듯 사막에 해가 지고 어둠이 사방에서 몰려오기 시작할 즈음에, 우리 일행은 일망무애의 사막가운데 조그마한 부락을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그 부락에 있는 어떤 정말 선교사 집앞에 하루밤의 유숙을 청하게 되었다.


사막의 밤

크 소리에 문을 열고 우리를 맞아들인 집주인들의 기쁨은 실로 예상 이외였다. 귀찮은 여객들에게 하루밤의 잠자리를 제공한다는 것이, 무엇이 그렇게 기쁠까 생각하면서 그들이 두손을 벌리고 눈을 빛내이면서 떠들고 짓거리며 멀리서 온 손을 환영하는 말에 나는 감사의 뜻을 표하였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것도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마치 절해고도에 귀양온 사람들이나 같이 이 광막한 사막에 외로운 살림을 해 나가는 그들에게 그들과 한가지로 구라파의 말을 하는 사람들이 반갑지 않을 리가 없었다.
우리 일행 중에서도 물론 콜맨씨와 그 다음에는 영어를 자유롭게 쓸 줄 아는 몇 사람이 가장 환영을 받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건물의 외양은 몽고식과 구라파식을 절충한 소잡한 양식이었으나 내부의 설비와 장식 등은 상당히 정비된 서구라파식 문화를 보여주었으며 주인측의 네사람도 모두 교양 있는 선교사들이었다. 그 중 둘은 여인네 둘은 남자였다. 그러나 그들이 두 쌍의 부부이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모두 독신자 노총각에 노처녀들이었다.
우리 일행을 위하여 그들이 준비해준 만찬도 꽤 훌륭한 것이었다. 신선한 우유 보드라운 양고기 새로운 빵 등 간단하나마 깨끗하고 풍미있는 식탁이었다.
식탁의 화제는 우리가 가지고 갔던 영자신문을 중심으로 하여 다음에서 다음으로 그칠 줄을 몰라 그야말로 목마른 사람이 물을 구하듯이 이 사막의 고도의 주인공들은 외부 세계의 최근의 모든 사건에 쉴 줄 모르는 질문의 화살을 던지는 것이었다.

'크라이스트'의 진리를 믿고 그 전도를 위하여 속세의 생활을 버려 그야말로 사막의 광야에 거룩한 고행을 하고 있는 그들이었으나 그들의 온갖 관심과 흥미는 모조리 그들이 버리고 온 인간속사에 휩쓸리는 것이었다. 기독교에 관한 편언척구도 우리는 귀에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들의 이러한 태도는 나에게는 심히 자연스러웠으며 또 그렇기 때문에 퍽으나 기쁘고 유쾌한 것이었다.
우리는 가지고 있던 십월 십일월분의 영자신문을 모두 그들에게 제공하고 그들과 함께 밤이 깊어가는 것을 잊어버리고 담소하여 침대에 몸을 던진 것은 새벽 두시가 지나서였다.
실로 유쾌한 밤이었다.

이튿날 아침 우리는 이 유쾌하고 고마운 선교사들의 집에 작별을 고하고 다시 일망무제의 사막의 바다에 새로운 나그네의 발을 내놓지 않으면 안되었다. 하루밤의 신세를 갚기 위하여 숙박요금을 지불하겠다 하였으나 주인측은 굳이 사양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의 경영하는 몽고 아동의료교육기관에 약간의 기부로 사의를 표할 뿐이었다. 고색이 창연한 자그마한 벽돌집 교당(敎堂)과 그 옆에 5,60명의 몽고아동들을 교육시키기 위하여 세운 간결한 학교건축이 떠나는 나의 가슴에 이상스럽게도 그립고 애닯은 정서를 자아내어주었다.
네 선교사는 교당문앞에 서서 서로 아득히 안 보이게 될 때까지 손수건을 흔들어 주었다.


사막

정의 제 2일에 들어서니 고원의 경사는 점점 높아지고 기온은 급속히 한랭하여지며 바람이 몹시 일어나 누런 모래가 때로는 앞길을 가리울만큼 어지러이 날렸다. 마치 거대한 누런 기둥이 사막 한복판에서 하늘에 닿도록 서 있는 듯이 선풍에 휘날리는 모래떼를 바라보는 것은 실로 장관이었다.
이 날은 아침부터 제 3일에 들어서니 고원의 경사는 점점 높아지고 기온은 급속히 한랭하여 바람이 몹시 일어나 누런 모래가 때로는 앞길을 가리울만큼 어지러이 날렸다. 마치 거대한 누런 기둥이 사막 한복판에서 하늘에 닿도록 서있는 듯이 선풍에 휘날리는 모래떼를 바라보는 것은 실로 장관이었다.
이날은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만 하루를 달렸으나 우리의 자동차는 마침내 부락의 그림자조차 발견하지 못하였다. 하는 수 없이 비교적 바람없는 사구의 비슬타리에 조그마한 우물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나마 천행으로 여기고 그 옆에 하루밤의 노숙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식사를 가지고 온  커피차만  자동차용의 개솔린 불에 끓인 까닭에 벌써 꽝꽝 얼어붙은 식료품을 몇 가지 꺼내어 근근히 흉내만 내고 밤에 들어 갑자기 추워지는 사막의 기온에 떨면서 잘 준비를 하였다. 준비라고 해야 가지고 온 자루 이불을 모래위에 펴놓은 것 밖에는 별 신통한 도리가 있을 리 없었다.

이불과 요를 겸하여 두꺼운 양털가죽으로 만든 말하자면 커다란 자루처럼 되어있는 이 침구야말로 우리 사막의 여행자를 위하여 다시 없는 유일의 잠자리였던 것이다. 피스톨을 베고 소총은 옆에다 끼고서 가죽옷 입고 장화신고 방한모 안경 그대로 자루속으로 쑥 들어가는 것이 무릇 사막여행자의 취침의식의 전부인 것이다.
잘때도 총을 손에서 떼지 않는 것은 사막을 횡행하는 표한한 도적의 떼를 두려워해서 그러는 것 보담도 먹을 것을 찾아 밤벌판을 방황하는 잔인무비한 맹수의 떼에 갖추기 위해서이다.
방한모를 머리와 뺨을 가리고 방안안경으로 눈을 가리었으나 그래도 머리를 이불밖에 내어놓을 수 없을 만큼 사막의 밤은 추웠다. 한란계를 들여다보니 영하 20도를 훨씬 내리고 있었다. 나는 자루 이불 속에다 머리까지 쑥 파 들어가 눈을 감았다. 그러나 호흡이 곤란하여 이따금씩 자루밖에 머리를 내어놓아 숨을 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때마다 나는 나의 주위에 전개된 밤 사막의 무겁고 침울한 광경을 바라다볼 수 있었다. 멀리 어둠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평탄한 지평선에서는 끊일 새 없이 마치 무서운 괴수의 독기처럼 새카만 구름이 뭉기뭉기 떠올라 그것이 보는 사이에 넓은 하늘을 다 덮어갔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다만 한가운데 하늘의 절정만이 검푸른 야색을 남기고 그 나머지는 완전한 암흑 속에 그림자를 잃고 마는 것이었다. 이 침울하고 처참한 자연의 조화를 바라보는 것은 마치 무슨 불길한 징조나 당하는 것처럼 괴롭고 불안하였다.
그러나 몇 번이나 자루 이불을 들락날락 하는 사이에 불길한 자연의 조화는 차차 그 협위의손을 거두었다. 새카맣던 밤하늘은 차차 그 본래의 암람색을 회복하고 암흑 속에 자취도 없이 사라졌던 먼 지평선도 이제야 그 암시와 약속을 품은 희미한 선으로 대지와 천공을 나누어 놓는다.
그리하여 하나씩 둘씩 반짝거리기 시작한 별들은 삽시간에 온 하늘을 덮어놓고 그 영원히 젊은 눈동자로 밤의 땅을 향하여 영구히 풀지 못할 수수께끼를 속살거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추위도 잊어버리고서 한참동안이나 이불밖에 머리를 내어놓은 채로 이 한없이 아름답고 거룩한 사막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아! 얼마나 장엄하고 얼마나 삼비한 광경이었으랴 그 광경은 이제 먼 옛날의 아득한 추억속에 희미해졌으며 또 나의 마음도 벌써 그때의 새롭고 보드라운 젊은 감수성을 많이 잃었으련만 그래도 이 밤의 기억만은 언제까지나 나의 마음속에 새롭다.
이 사막을 생활의 무대로 하고 이 밤하늘을 생활의 배경으로 하는 저 유목민들의 정열과 감격이 어떠한 것인가를 나는 처음으로 아는 듯 싶었다.
세계를 석권한 저 성길사한(成吉思汗)의 뒤를 이은 이민족의 지도자들이 전통과 습관에 절인 정주문명에 대하여 보여준, 저 완화할 수 없는 적대감과 가차없는 박해와 파괴의 역사도 이 특수한 자연의 분위기 속에 잠길 때에는 극히 단순한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생각되는 것이었다.
이 한없이 장엄하고 자유로운 자연의 품속에 호흡하고 생활하는 인종이 한줌의 흙과 한주먹의 씨로 삶을 농사짓고 귀치않은 속박과 아니꼬운 복종의 쇠사슬로 얽어매인 정주문명의 번잡한 생활형태와 타협되고 융화되기를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으랴!

 


고륜(庫倫)에로


감명 깊은 밤이 새이니 목적지인 고륜까지에는 사흘의 여정이 남았을 뿐이었다. 아득히 보이는 먼 지평선에서부터 시작된 희미한 여명의 빛이 차차 넓은 천공을 일제히 덮기 시작하니 검푸른 야색(夜色)은 어느 듯 사라지고 처음에는 맑은 은회색이 다음에는 투명한 담청색이 하늘을 물들이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젊은 아침 태양의 황금빛 햇발이 그 타는 듯한 반영을 아득한 지평선 저쪽에서 보내기 시작할 때는 우리는 벌써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제 3일의 여정을 시작한 뒤었었다.
우리의 여행은 이날로 전일과 다름없이 단조한 풍경의 전변 이외에는 이무런 풍파도 없이 무사히 계속되었다. 다만 고원지대의 절정이 가차워짐을 따라 온도가 점점 강하될 따름이었다. 이 날의 여행에서 본 기이한 현상을 구태여 들어본다면 그것은 사막의 고원지대에 곳곳마다 있는 일종의 분지가 그 연변에 하얗게 천연의 소금 *을 붙 **** 다는 현상일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우수(雨水) * * * 함되고 있는  염분이 몇 번이나 이 분지에 내렸다 ** 증발되는 우수에서 마침내 분리되어서 이렇게 분지의 가장머리를 희게 장식해주고 있는 것이려니 하고 생각하면서 나는 그 현상을 보았던 것이었다.

이날밤도 역시 전야와 마찬가지로 야천에 노숙을 하여 지내었다. 추위는 훨씬 더 심한 듯 하였다.
다음날 오정쯤 하여 우리는 비로소 망막한 사막 가운데의 풀밭을 발견하였다.
풀은 다 시들어 누렇게 되었다. 그 곳에는 천막의 형적도 있고 유목민이 오랫동안 생활의 근거지로 하였던 것을 표시하는 여러 가지의 흔적이 많이 보였다. 아마도 도적의 횡행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전쟁의 화가 그들을 이 근거지에서 다른 대로 쫓아 보내고 만 것이다.
이 초원이 있는 장소는 일종의 비스름한 산비탈을 이루어 이 산비탈에서 우리는 수백마리로 떼를 지어 달려가는 영양의 무리를 만났다. 사막지방에 흔한 사슴의 몸둥이에  양의 뿔이 돋은 짐승이다. 우리는 환호의 소리를 지르면서 자동차에서 소총을 들어 되는대로 함부로 이 짐승의 떼를향하여 탄환을 보내었다.
인적이 드문 광야에 맘대로 뛰놀던 짐승들은 이 불의의 공격에 그만 정신을 잃어 황망하게 도망하고 말았으나 그래도 그들이 다 도망하고 난 자리에는 네머리의 희생자가 피에 묻어 쓰러져 있었다.

이 뜻하지 않은 산양은 이날 밤 우리에게 진미의 만찬을 제공하였다. 마른 음식에 노당이 닳던 우리는 국을 끓여먹기에 의견이 일치되어 모래위에 쌓여있는 눈을 녹여서 물을 만들고 깨솔린 통으로 솥을 삼아 이것 또한 요행이 사막 한복판에 여기저기 서 있는 풍우에 썩는대로 내버려둔 전신주를 발견하여 가지고 온 보신용의 비수로 깍아서 불사를 나무를 구하니 이만하면 요리의 준비는 충분하였다.
간은 물론 가지고 있는 소금이었다. 까솔린 냄새는 이 훌륭한 스프의 훌륭한 가미를 조금도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일종 미묘한 향료로서의 작용을 해 주는 것도 같았다. 이날밤의 국처럼 맛있는 음식을 나는 그전에도 그후에도 맛본일이 없다.
고기는 덩어리채 꺼내어서 소금을 찍어서 먹고 국물은 훌훌 들여마셨다. 만일 의외의 얻은 이 훌륭한 국이 아니었던들 이날밤의 노숙은 실로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란계는 영하 30도 이하의 저온을 가르키고 있었다. 그러나 뜨거운 국을 양껏 먹은 기운으로 우리는 모두 비교적 많은 시간을 자루이불속에 파묻혀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튿날 아침 잠을 깨니 이제 저녁 국에 입속을 데인 사람이 나혼자뿐이 아니었다. 입천장 데어 벗어진 엷은 가죽을 모두 뱉았다.
장가구를 떠나서 나흘째 되는 날 부터는 사막의 이곳 저곳에 유목민의 천막과 가축의 떼를 발견하게 되었다. 때때로 우리는 음료수를 얻기 위하여 이들 유목민의 부락에 들르기도 하였다. 자동차가 멈추기만 하면 그들은 와~ 하고 몰려들어 찻속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호기심에 눈을 빛내면서 우리에게 그들의 몽고말로 무엇이라고 수작을 걸기도 하였다.
그들은 사양없이 우리에게 물건을 요구하였다. 담배와 술을 그들은 가장 탐내었다. 담배를 한 개 꺼내서 주면 그들은 그것을 몇사람이거나 모두 한모금씩 돌려가면서 빨았다. 나는 그들에게 가지고 있던 위스키를 주었다. 그들의 마치 어린애와 같은 기쁨을 보니 나는 주초(*술담배)를 사랑치 않는 탓으로 술과 담배를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것을 애석하게 생각한 것이 아마 이때에 한번뿐일 것이다.
장가구를 떠나서 닷새 되는날 우리는 마침내 목적의 지점 고륜에 다달았다. 고륜 미처 못가서 멀리 왼쪽 구릉 위에 장대한 사원건물을 발견하였는데 그것은 몽고민족의 생활에 마치 아편이나 다름없는 해독을 흘려보내는 저 라마교의 사원이었다.
이 절은 약 5백여명의 신도를 그 지배하에 두고 있는 외몽유수의 거대한 라마교 사원이었다. 여행의 제 3일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고륜에 다다를 때까지 계속되어 우리 일행이 고륜의 시가에 들어섰을 때는 새하얀 눈이 사막의 벌판 몽고식의 웅장한 사원 건축 또는 허무러지는 인가 대상들의 천막모든 것을 덮고 있었다.
                                                                                             
<중앙, 1936,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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