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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제목 몽양 추도사
작성자 몽양사랑지기
작성일자 2023-08-07



유어만 주한중국총영사

---한국민족이 낳은 거성

고 여운형 씨가 청년시대 상해에 망명하던 때부터 친분이 많던 재경중국총영사 유어만 씨는 몽양 선생의 서거를 애석하게 여기어 다음과 같은 회고담을 하였다.

나는 한국에 오기 전에 아는 사람이라고 여 선생 단 한 분이므로 여선생의 서거는 더욱 애처롭습니다. 여 선생을 처음으로 만나기는 상해 어느 운동장에서인데 그때는 매주 일요 일이면 꼭 만나서 축구게임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여 선생이 일본경찰에 잡혀가시 게 되어 처음으로 여선생이 정치가인 줄 알았습니다. 하여튼 여 선생을 정치가로서는 좌 우를 막론하고 최고지도자인 줄로 압니다. 일주일 전에도 프랑스 영사관에서 만났습니다 만 자객이 따른다는 말을 선생의 입에서 스스로 듣고 여 선생도 정치적으로 최고단계에 도달하였다고 느꼈습니다.”

 

윌리엄 랭던 주한미국총영사

여운형 씨는 내가 십이년 전 한국에 부임한 이래 잘 압니다. 어제 여운홍 씨에게 조위문을 보냈습니다만 여씨의 서거는 한국건국을 위하여 큰 손해입니다. 여씨는 혁명가로서 정치적 식견이 탁월하며 개인적 교제에 있어서도 남을 중상함을 모르는 모범적인 신사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외교가로서도 어느 나라 외교관에 못지않은 힘을 가졌습니다. 일제시대에는 일본인들의 감시가 심해서 그다지 만나지도 못했지만 해방 후에는 개인적 교제도 많았고, 여씨는 미국 요인들과도 깊은 친분이 있었습니다.

 몽양이 비명에 숨졌을 때, 나의 기억에 남아 있는 모든 말과 행동을 종합하고 분석함으로써 내가 도달한 결론은, 몽양이 개인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소련보다는 미국과 더 가까웠지만 정치적으로는 이들 양국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중립이었으며, 그가 갖고 있던 유일한 목적은 미소 양국으로 하여금 가급적 빨리 한국으로부터 물러나게 하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여운홍에게 보낸 브라운 소장의 조위문

나는 백씨(伯氏) 여 선생이 조난(遭難)하신 데 대하여 당신에게 이 글월을 쓰게 되는 것을 대단히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백씨와 오랫동안 개인으로 친히 알게 되었던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정계에서 선생의 활동이나 역량에 대하여 심심한 존경을 가져왔습니다. 선생의 순의(殉義)는 한국의 큰 손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족과 친구들에게 저의 조문을 전하여 주십시오.

 

김용중 씨의 워싱턴에서의 추도사

여운형 씨의 서거는 그의 가족뿐만 아니라 전 한국민족인 통탄하는 바이다. 그의 서거는 그의 친근자뿐만 아니라 전 한국민족의 크나큰 비애이다. 그는 민족을 사랑하였으며 민족은 그를 흠모하였다. 그는 누구를 해친 일도 없다. 그러나 그는 국가의 자유보다도 그들 자신을 위한 권력을 원하는 자에 대하여 냉혹하게 살해되었다. 그는 국가를 위하여 싸웠고 또 죽었다. 우리는 그의 피를 흘린 것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는 조선의 정신을 앙양할 것을 확신한다. 그는 그의 국가역사에서 영원히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는 일본의 압제자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투옥으로 굴절치 않았다. 그는 청년들을 애호하였으며 빈궁자를 사랑하였다. 그는 근대조선 최대의 지도자였다. 위대한 애국자는 떠났다. 그러나 그는 모든 조선인의 흉중에서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며, 그의 완수치 못한 사업을 그의 국가가 자유독립할 때까지 계승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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