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일, 몽양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특히 '멋있는 한국인의 표상'이라고 칭송했다.
[사진출처-(사)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선생은 영원한 우리의 스승입니다. 선생은 역사 속의 영원한 승리자이십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19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강당에서 열린 '몽양 서거 60주년 학술심포지엄' 축사를 통해 "60년 세월을 견뎌낸 우리 민족은 이번에야말로 60년전과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지금 눈부신 남북간 교류협력의 큰 길을 바라보고 있다"면서 이같이 선생을 기렸다.

몽양이 '승리자'인 이유와 관련, 김 전 대통령은 "선생이 그토록 염원하시던 민족통일의 빛이 보이기 시작"하는 한반도 내외정세를 들었다. 남북간에는 불가역적인 화해.협력의 흐름을 타고 "통일의 서광이 저 끝에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하고 있"으며, 국제정세도 "북한 핵이 해결되고 6자회담이 성공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따라서 "우리는 이제야말로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남북이 평화공존하고 평화적으로 교류하다가 평화적으로 통일해야 할 것"이라며 "이제 그 때가 왔으며 가능성이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 김대중 전대통령이 영상축사를 보내왔다. [사진-통일뉴스 이광길 기자]


건강이 좋지 않아 영상으로 축사를 대신한 김 전 대통령은 "민족의 분단을 개탄하고 분노하며 우리 민족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하고자 온 정열과 노력을 바쳤던" 몽양의 좌절과 6.15공동선언 이후 남북관계 발전을 대비시켜 "선생도 오늘의 진전에 대해서 지하에서 기뻐하실 걸로 믿는다"고 자부하기도 했다. 지팡이에 의지해 연단에 선 이수성 전 총리는 "사람은 인연으로 산다"면서 "몽양 선생을 처음 뵌 것은 1946년 10살때 혜화동 5번지에 살 때였다"고 회고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돌계단을 따라 달팽이를 잡으러 올라가다 당시 테러 위협에 시달리던 몽양 선생의 경호원들에게 붙들려 선생을 만났다는 것이다.

이 전 총리는 "몽양 선생이 아버지가 누군가 묻고 '훌륭한 분이다' 하시더니 '보내줄테니 노래 하나 하라'고 해서 당시 학교에서 배운 '스텐카라친의 노래' 신나게 불렀다. 선생은 잘 불렀다 칭찬하시고 손을 꼭 잡고 '평생 사람을 도와라.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그 다음해(1947년) 7.19 몽양 선생이 돌아가시던 현장에 있었던 기억, 며칠 후 장례식 때 "서울 시내가 흰옷(상복)으로 덮였다"는 기억도 들려주었다. 아울러 "3년전에 평양을 방문했을 때, 몽양 선생의 딸 여원구 씨와 밥을 같이 먹은 적 있다. 나보다 나이가 위인 여원구씨가 '이 총리, 내 동생하라' 해서 의남매 맺은 적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 전 총리는 몽양의 '통합정신'이 오늘의 현실에서도 여전히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몽양의 통합지향적 실천에 대비해, 남북과 영.호남을 갈라치며 표얻기에 혈안이 된 여야 대선주자들의 행태를 강도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제는 정말 몽양의 뜻이 실현될 때가 왔다"



▲ 왼쪽부터 오충일, 정동영, 이정식, 백낙청, 한사람 건너 이수성, 강운태, 조영건, 최상용.
 [사진-통일뉴스 이광길 기자]

이수성 전 총리와 비슷한 연배인 백낙청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는 분단시대를 살아온 다른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자신도 몽양을 알지 못하고 젊은 시절을 보냈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했다.

그러나, "뒤늦게 철이 들어 몽양 생각을 많이 한다"는 그는 "'6.15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 일을 보면서 6.15시대야말로 몽양 정신이 실현되는 시대이고 6.15남측위원회도 그 작업에 동참한다는 긍지를 갖는다"면서도 "동시에 이 시대에 몽양 선생같은 분이 계셨다면 얼마나 이 작업이 힘차게 됐을것인가는 아쉬움"도 토로했다.

이같은 '아쉬움'은 그가 제창한 '변혁적 중도주의'의 기반 위에서 남북 화해, 남남갈등 해소가 진척되지 못하는 현실과도 직결된다. 그가 대표로 있는 6.15남측위원회 안팎에도 "민족과 민중을 위한 원칙을 뚜렷이 세운 중도주의"가 우리 역사에서 성공한 적이 있느냐는 냉소적인 현실주의자, 여전히 이념적 공격을 해대는 "극단적 우익", "관념적인 극좌"까지 숱한 암초들이 널려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 대표는 "몽양 선생의 꿈이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그토록 많은 고통을 겪고 이제 21세기에 들어서 드디어 남북화해의 길이 열리고 남쪽 안에서도 관념적인 극좌나 극단적인 우익의 논리를 배제하고 자주평화통일을 목표로 하는 중도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 이제는 정말 몽양 선생님의 뜻이 실현될 때가 왔다"고 전망했다.

"오늘 우리가 몽양 선생을 모시고 덕을 못보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그분이 남긴 뜻과 말씀과 행적이 있기 때문에 거기서 우리가 얼마든지 힘을 얻어서 분단 극복의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점, 나아가 "지금은 몽양 선생과 같은 걸출한 지도자가 아니더라도 평범한 시민 하나하나가 그분의 뜻을 따라서 우리 시대의 과업을 성취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리고 때가 무르익었다"는 점을 '낙관적 전망'의 이유로 들었다.



▲ 2부 학술심포지엄에서 이정식 펜실바니아대 교수가 발제에 나섰다.
[사진-통일뉴스 이광길 기자]

범여권 대선예비후보들인 강운태 의원과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3분 스피치에 이어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사회로 이정식 펜실바니아대 명예교수의 '여운형의 이상과 선택-냉전의 희생양' 기조발제, 조영건 경남대 명예교수, 최상용 고려대 교수의 발제와 각각 보수와 진보, 중도를 대표하는 박세일 서울대 교수,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 남재희 전 의원의 지정토론이 이어졌다.


'(사)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회장 여철연)'과 몽양60주기추모제준비위가 개최한 이날 학술심포지엄은 발언자 외에 오충일 '국가정보원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 위원장, 장명국 내일신문 사장을 비롯한 각계 인사와 시민등 300명이 참가한 가운데 3시간 동안 진행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 영상축사(전문)>

절세의 애국자이신 몽양 여운형 선생의 서거 60주년을 맞이하여 진심으로 선생의 은혜를 감사하고 그 명복을 비는 바입니다.

여운형 선생은 우리가 다 아는 바대로 일생을 민족독립에 헌신한 애국자이십니다. 2.8 독립선언, 3.1 독립운동에 참여하셨고 상해 임시정부에서도 젊은 세대로 활약하셨습니다. 일제의 패망이 임박하자 동지들과 함께 건국동맹을 결성하여 지하에서 활동하며 해방에 대비하셨습니다.

해방 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를 만들어 남북을 합친 민족의 독립에 대비하셨습니다.

여운형 선생은 민족통일을 위해서 헌신하다가 귀중한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선생은 우리가 원치않는 민족의 분단을 개탄하고 분노하며 우리 민족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하고자 온 정열과 노력을 바치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선생의 활동을 시기한 세력에 의해서 선생은 귀중한 목숨을 민족의 제단에 바치게 되었습니다.

여운형 선생은 용기와 실천의 지도자였습니다.
조국독립을 위해 망명과 투옥과 감시생활을 사양치 않았습니다. 민족분단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여운형 선생은 다양한 능력과 활동의 소유자였습니다.
독립운동가, 언론인, 운동가, 체육인, 외교가 등 많은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과 활동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젊은이를 사랑하고 그들과 어울렸으며 그들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상해 망명시에도 신한청년당을 조직하기도 하였습니다.

여운형 선생은 멋있는 한국인의 표상이었습니다.
뛰어난 용모에 거침없는 웅변가였습니다.
성공적인, 국제적인, 그리고 영원한 청년이었습니다.
완전한 한국인이었습니다. 멋을 아는 분이었습니다. 우리의 자랑이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원효대사와 여운형 선생은 멋의 한국인의 쌍벽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선생이 서거하신 이후 60년이 되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선생이 그토록 염원하시던 민족통일의 빛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60년 세월을 견뎌낸 우리 민족은 이번에야말로 60년전과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지금 눈부신 남북간 교류협력의 큰 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통일의 서광이 저 끝에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북한 핵이 해결되고 6자회담이 성공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야말로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남북이 평화공존하고 평화적으로 교류하다가 평화적으로 통일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그 때가 왔으며 가능성이 보이고 있습니다.
선생도 오늘의 진전에 대해서 지하에서 기뻐하실 걸로 믿습니다.

선생은 영원한 우리의 스승입니다.
선생은 역사 속의 영원한 승리자이십니다.
선생은 우리의 선두에 서서 우리 민족의 화해와 협력과 통일의 길을 힘차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백낙청 상임대표 축사>

전직 대통령께서 좋은 말씀을 해주신데다가 전총리께서 회고담을 곁들여서 좋은 말씀을 해주시고 나니까 제가 할 말이 특별히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수성 전 총리와는 비슷한 연배입니다만 몽양 선생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이 젊은날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 나라에는 저 같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습니다. 몽양 선생이 가신 뒤로 몽양 선생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아니면 이름 정도 아는 상태에서 살아온 사람이 의외로 많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저는 뒤늦게나마 철이 들어서 요즘은 몽양 선생 생각을 많이 합니다. 특히 '6.15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 일을 보면서 6.15시대야말로 몽양 정신이 실현되는 시대이고 6.15남측위원회도 그 작업에 동참한다는 긍지를 갖습니다. 동시에 이 시대에 몽양 선생같은 분이 계셨다면 얼마나 이 작업이 힘차게 됐을것인가는 아쉬움도 갖습니다.

작년에 몽양 선생 59주기 때도 제가 추도의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사실 작년 59주기 때만 해도 그 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진 듯 했습니다. 몽양 선생께서 처음으로 국가에서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게되신 뒤에 최초로 치러지는 추모자리였습니다.

그 때에 비하니까 금년에 60주기라 해서 꺾어지는 해이기도 합니다만 59주기보다 더 많은 분들이 모였고 이런 성대한 학술행사도 하니까 이제는 그래도 몽양 선생에 대해서 점점 사람들이 많이 알게 되고 그 분의 남기신 뜻이 이 시대의 민족과 민중을 위한 과업을 실천하는데 점점 더 힘을 발휘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요즘 남남갈등의 해소라든가 남북화해라든가 또는 중도주의, 그것도 민족과 민중을 위한 원칙을 뚜렷이 세운 중도주의를 얘기하면 현실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합니다. '우리 역사상 좌우합작이라든가 중도주의가 많았지만 성공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이렇게 얘기하곤 합니다. 저는 그에 대해서 하나는 20세기와 21세기는 다르다, 또 심지어는 20세기 중반에 몽양 선생이 활동하던 시기만 하더라도 몽양 선생을 암살함으로써 좌우합작의 노력을 좌절시켰지 그러지 못했더라면, 꼭 성공했을지는 의문입니다만, 훨씬 더 힘을 받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제 그 후에, 몽양 선생의 꿈이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그토록 많은 고통을 겪고 이제 21세기에 들어서 드디어 남북화해의 길이 열리고 남쪽 안에서도 관념적인 극좌나 극단적인 우익의 논리를 배제하고 자주평화통일을 목표로 하는 중도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 이제는 정말 몽양 선생님의 뜻이 실현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가 몽양 선생을 모시고 덕을 못보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그분이 남긴 뜻과 말씀과 행적이 있기 때문에 거기서 우리가 얼마든지 힘을 얻어서 분단 극복의 일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금은 몽양 선생과 같은 걸출한 지도자가 아니더라도 평범한 시민 하나하나가 그분의 뜻을 따라서 우리 시대의 과업을 성취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리고 때가 무르익었다 하는 점입니다.

오늘 이같은 학술회의를 열어 몽양 선생을 추모하면서 또 그의 사상과 업적을 본격적으로 조명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정리-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