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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여운형, 박헌영 세력에 피살 가능성”
작성자 몽양사랑지기
작성일자 2021-06-05
“여운형, 박헌영 세력에 피살 가능성”


원로학자 이정식 교수, 60주기 심포지엄 발표문
“몽양, 암살 직전에 美군정과 협력 시도…
평양의 딸, 아버지 암살범은 종파분자”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입력 : 2007.07.19 00:58 / 수정 : 2007.07.19 02:45


▲ 이정식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

정확히 60년 전 오늘인 1947년 7월 19일,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지도자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1886~1947)이 목숨을 앗는 총탄을 맞았다. 지금까지 이 암살은 극우파가 주도했다는 것이 통설이었다. 2005년에야 건국훈장이 추서될 정도로 그의 중도좌파(中道左派), 좌우합작 노선은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서 어딘가 ‘불편한’ 기억이었다. 원로 정치학자로 한국 현대사 연구에 많은 업적을 남긴 이정식(李庭植)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는 지금까지의 통설과 달리 “박헌영(朴憲永)과 남로당 세력이 암살을 주도했을 가능성이 있고, 여운형은 그 직전 미 군정과 협력하려 했다”는 내용의 발표문을 19일 열리는 추모 학술심포지엄 주최측에 보냈다. 오는 9월 ‘여운형 평전’(서울대출판부) 출간을 준비하고 있는 그를 18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암살 배후에 박헌영 세력이 있었다는 근거는?


“1981년 다른 재미(在美) 학자들과 함께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다. 공항에 환영 나온 여성이 자신을 여연구(1927~1996)라고 소개했다. ‘몽양 둘째 따님 아니십니까’라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몽양에 대해 관심이 많아 전기를 쓸 계획이다’고 했더니 묻지도 않았는데 ‘우리 아버지를 암살한 건 종파분자들입니다’라고 말했다”


―그건 누구를 지칭한 것이었는가?


“ ‘종파분자’라는 건 공산당 내에서 반당(反黨) 분자로 규정된 사람들이다. 우익더러 ‘종파분자’라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박헌영이라는 얘기다. 그때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라고 생각했다. 나도 여운형 암살은 극우파의 소행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소련측 자료를 보고 나서 ‘박헌영 세력일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소련측 자료란 뭔가?


“최근 비밀 해제된 소련 군정측의 ‘스티코프(북한 주둔 소련군 사령관) 일기’와 ‘남조선 정세 보고서’ 등이다. 암살 직전의 상황을 보면 여운형은 박헌영 세력과 매우 대립적인 관계였다. 소련·김일성과도 마찬가지였다. ‘스티코프 일기’를 보면 1946년 9월 25일 여운형이 평양에서 김일성을 만나 ‘박헌영이 나와 전혀 협의하지 않고 내가 당수로 있는 인민당을 남로당에 흡수하려 했다’ ‘내가 공산주의자들 손 안에서 농락거리가 될 수 있다’고 항의했다. 그러자 김일성은 오히려 박헌영의 편을 들며 여운형을 질책했다.


―왜 여운형에게 그렇게 대했을까?


“이미 소련으로부터 여운형 세력을 흡수하라는 지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후 박헌영측은 여운형의 좌우합작운동을 계속 반대했다. 1947년 3월 16일 자택에서 좌파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폭탄 테러가 일어난 뒤로 여운형은 공산당과 결별하게 된다. 여운형측은 공산당에 대해 ‘소련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는 사대주의 이데올로기’라고까지 비판했다. 이렇듯 여운형이 암살 직전까지 숱한 테러를 당하면서 싸우고 있던 대상은 우익 세력이 아니라 박헌영 쪽이었다. 반면 여운형과 미국과의 관계는 좋았다.”


―여운형이 미 군정과 협력했다는 얘긴가?


“이것은 처음 공개되는 것인데, 여운형이 암살당하던 날 승용차를 타고 가려 했던 목적지는 미 군정의 민정 책임자였던 E A 존슨(Johnson)의 집이었다. 그 근거는 내가 입수한 존슨의 회고록 ‘페르 귄트의 모습인 미 제국주의(American Imperialism in the Image of Peer Gynt· 1971)’다. 당시 미 군정이 우익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여운형을 민정장관에 임명하려 했다고 기록했다. ‘미국이 한국을 점령하고 있는 한 독립을 위해선 싸우지 말고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 암살 직전 여운형의 결심이었다.”


―그런 새로운 해석들이 한국 현대사에 주는 의미는?


“여운형이 한때 소련·공산당과 손을 잡은 이유는 그들이 제국주의를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광복 이후 소련 역시 제국주의 국가로 변해 국내 공산당을 지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 등을 돌려 버린 것이다. 만약 그가 좌익에게 암살당했다면 그 이유 때문일 것이다. 여운형이 결코 단순한 ‘좌파’나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좌우 합작을 추진했던 진보적 민족주의자였다는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몽양 여운형의 60주기 기념 심포지엄에서 발표자로 나서는 이정식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 <여운형 평전>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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