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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현대사 아리랑]‘세계사적 개인’이었던 민주주의자 여운형 ③
작성자 몽양사랑지기
작성일자 2021-05-04
[현대사 아리랑]‘세계사적 개인’이었던 민주주의자 여운형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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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영과 쌍벽 이룬 조선의 혁명가

몽양 여운형. <경향신문>

몽양 여운형. <경향신문>

몽양 선생은 돌아가실 때까지 수많은 살해 위협에 시달렸으니, 큰 것만 골라도 12번이다. 민족사의 큰 별이 떨어진 비극의 그날 하오 1시. 몽양이 탄 차가 혜화동 로터리에 이르렀을 때였다. 경찰관 파출소 앞에 서 있던 트럭 한 대가 갑자기 달려나와 몽양 차를 가로막았고, 급하게 멈출 수밖에 없는 차 속에서 몽양과 신변보호인 박성복(朴性復) 그리고 ‘독립신보’ 주필로 건준 간부였던 고경흠(高景欽)과 운전수가 어리둥절해하는 순간, 두 발 총소리가 나면서 몽양은 풀썩 쓰러졌다. 한지근(韓智根)이라는 모진 놈이 몽양이 탄 자동차 앞뚜껑 위로 올라가 권총 두 방을 쏘았던 것이다. 이기형옹의 회상이다.

“일본 옷 하까마를 입고 불상을 차려놓고 아이들과 일본말을 주고받는 춘원 이광수를 보고 노여워 하였고, 만해 한용운을 만나고 나올 때는 그의 높은 절개에 경복함과 동시에 가난과 병중에 있는 그에게 연민의 정을 금할 길이 없었다.

몽양을 만나고 나올 때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것은 넘어져 가는 고래등 기와집을 떠받치는 큰 기둥을 찾아 불잡는 바로 그것이었다.

“임시정부는 안 되고 당으로 해야”

여기서 잠깐 몽양의 용모에 대해 말해본다면- 빛나는 두 눈, 넓고 반듯한 두드러진 이마, 우뚝한 코, 복스럽고 큰 두 귀, 처지지도 빠지지도 않은 아래턱 윤곽 등 어느 하나 빠지는 데 없고 빈틈없는, 원로 언론인 김을한의 표현을 빌리면 그야말로 ‘미스터 코리아’였다. 그의 조부가 한번 보자 ‘왕재(王材)’라고 탄성을 올린 것도 과찬만은 아니었다고 수긍이 갔다. 키는 보통이 훨씬 넘고 골격은 굵고 운동으로 다져진 짜임새 있는 몸매에 더할 데 없이 당당한 체격이었다. 누구는 그 얼굴, 그 체격을 한마디로 ‘우람하다’고 표현했다. 몽양은 길을 걸으면 길에 꽉 찼고 연단에 오르면 단상에 꽉 찼다.”

몽양은 지극히 직수굿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지닌데다 또 지극히 실쌈스러운(성실한) 사람이었다. 박헌영과 쌍벽을 이루는 ‘세계사적 개인’이었다. ‘여운형론’을 쓴 김오성(金午星)은 말한다.

“우리나라에 박헌영씨와 같은 투사형 지도자와 여운형씨와 같은 정치가형 지도자가 있음은 원칙과 정책, 전략과 전술의 쌍벽을 가진 것으로 민족적인 행복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한 분이 들이친 뒤에 다른 한 분이 어루만져 수습할 수 있으니 그 얼마나 좋은 콤비이냐? 두 지도자는 서로 상이한 부면을 담당하면서 원칙적인 일치를 얻어 협동할 수 있을 것이다.”

김오성은 그러면서 몽양이 타고난 자유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성격을 높이 평가하며 몽양이 한 말을 든다.
“내 주장이 정당한 줄 의식할 때에도 여러 사람이 반대하거나 또는 다른 주장에 찬동할 때에는 내 주장을 포기하고 그 여러 사람의 주장을 따르겠다.”

1919년 4월 1일쯤이다. 상해 프랑스 조계에 조동호, 이동녕, 이시영, 조완구, 조성환, 김동삼, 조용은, 신규식, 신석우, 여운홍, 현순, 최창식, 이광수, 신익희, 유치진, 이규홍 등 수십 명과 함께 독립운동 기관을 세우자는 의논을 할 때였다. 몽양은 세 가지를 반대하였으나 중과부적이었다.

첫째, 사람들이 모두 ‘임시정부’를 세우자고 하였는데 몽양은 ‘정부’는 안 되고 ‘당’으로 해야 한다고 하였다. 아무리 임시정부라고 하더라도 명색이 ‘정부’가 되면 정부 체면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형편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민심을 강화시키고 일본에 대한 반항의 뜻이 크므로 ‘정부’로 해야 된다는 것이었으니, 몽양 주장은 현실론이고 다른 이들 주장은 추상론이었다.

둘째, 국호 ‘대한민국’의 ‘대한’을 반대하였다. ‘대한’이라는 국호는 조선에서 오래 쓴 적이 없고 잠깐 있다가 곧 망해버린 이름이므로 되살려 쓸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대한’을 주장하는 이들은 “대한으로 망하였으니 대한으로 흥하자”는 것이었다.

셋째, 몽양은 대한제국 황실 우대를 절대 반대하였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이태왕(李太王)이 죽은 뒤에 대한문 앞에 인민의 곡성이 창일하였다. 이것을 보면 민심이 아직도 황실에 뭉쳐 있으니 민심 수습상 황실을 우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8조에 ‘대한민국은 황실을 우대함’이라는 조문을 넣었다. 이처럼 봉건사상과 관료주의에 전통관념 껍질을 벗지 못한 상해임정이었다. 그들은 대한문 앞 인민들 곡성을 잘못 들었던 것이다. 망국의 울음도 아무 때나 울면 잡혀가므로 참고 있다가 고종 인산이라는 기회를 얻어 터져나왔던 울음이지, 황실을 그리워한 울음이 아니었다. 이만규(李萬珪)가 쓴 ‘여운형투쟁사’에 임정 난맥상이 나온다.

임시정부로 거두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안창호(安昌浩)가 오고 이동휘(李東輝)가 오고 이승만(李承晩)이 왔다. 이승만이 오기 직전에 그이의 위임통치 문제가 떠돌아 상해 여론이 물끓듯 하였다. 그가 민주국민회의 명의로 조선을 위임통치하여 달라는 청원을 윌슨 대통령에게 제출하였다는 것이다. 이 말이 나자 신채호(申采浩)는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북경 기타 지역에서도 이승만 대통령을 반대하였다. 몽양은 이 일을 안창호에게 물었다. 안창호는 “이승만의 하는 일을 나는 모른다”고 하였다. 몽양은 다시 “듣건대 국민회의 명의로 보냈다면서 회장이 모르느냐?”고 반문하니 안이 역시 “모른다”고 하였다. 몽양은 다시 안더러 “그렇다면 이승만의 일은 오해를 풀 수가 없지 않은가. 민단 주최로 환영회를 할 터인데 그 석상에서 설명을 구하고 다시 재신임을 요청하여야 할 일”이라고 하였다. 그 후 이승만은 민단 주최 환영회에 출석을 거절하였다. 그러나 몽양이 손중산(孫中山) 혁명의 일로 광동에 간 동안 민단 총무 장붕(張鵬)이 주최한 민단 환영회에는 출석하여 화관 씌우는 영예를 받았다.

대한제국 황실 우대 절대 반대

위_인천에 도착한 서재필(가운데)을 환영하는 자리에서. 오른쪽이 여운형. 아래_1946년 5월 미소공동위원회 미국 측 대표들과 함께 있는 여운형(오른쪽). <경향신문>

위_인천에 도착한 서재필(가운데)을 환영하는 자리에서. 오른쪽이 여운형. 아래_1946년 5월 미소공동위원회 미국 측 대표들과 함께 있는 여운형(오른쪽). <경향신문>

몽양은 모택동(毛澤東)과 몇 번 만났는데, 모택동 혁명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며 그 까닭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중국은 주대(周代) 800년간에 원시 공산주의 유속으로 정전법(井田法)을 써서 농민의 생활을 풍유하게 하였다. 진(秦)이 흥하여 전환하여 정전법을 폐하고 지독한 세를 많이 받아 농민생활에 위협을 주다가 2세에 망하고 동한(東漢)에 와서 유수(劉秀)가 농민의 인심을 얻어 혁명을 하고 주원장(朱元璋)이 또한 농민의 아들로 농민의 마음을 얻어 혁명을 하였으니, 지나의 혁명은 농민의 마음을 잃고는 성공하지 못한다. 이제 모택동의 혁명이 그 기초가 농민에 있으니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몽양은 레닌과 두 번 회견하였는데, 첫 번째는 일본 공산당 거물인 편산잠(片山潛)과 함께였고 두 번째는 손문(孫文) 대리인 구추백(瞿秋白)과 함께였다.
“관대한 덕량, 원만한 기질, 광박한 지식, 평범자약한 의표, 그리고 혁명가의 열정 모두가 과연 고대(高大)한 인물이었다.”
몽양이 본 레닌의 인상이다.
“동무는 조선독립을 위하여 생명을 희생하여 투쟁하겠는가?”
레닌이 편산잠에게 묻고 몽양한테도 물었다.
“동무는 일본혁명을 위하여 투쟁하겠는가?”
둘 다 “하겠다”고 대답하였다. 레닌이 기뻐하며 말하였다.
“소련과 핀란드 사이와 소련과 폴란드 사이에는 소련의 우월성으로 저편의 감정을 도발시키고 의구가 생기며 같은 공산당끼리도 원만치 못한 일이 더러 있다. 비록 혁명가라 할지라도 사람인 이상 감정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일본과 조선이 악수를 한다면 양국의 혁명은 무난할 터이니 힘쓰라.”

몽양이 소비에트식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조선에 일으켜야 한다고 할까봐 걱정하고 있는데, 레닌이 말하였다.
“조선은 농민의 나라이니 공산당 운동이 먹혀들기 어려울 것이다. 농민들이 지니고 있는 민족주의를 공명시켜 민족운동을 일으키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임시정부를 그대로 지지할 게 아니라 개조시킬 필요가 있다.”

트로츠키와도 회담하였으나 트로츠키 영어가 서툴러서 많은 이야기는 못하였다. 손문을 만난 몽양이 “선생 머리가 벌써 희어졌다”고 하자 손문이 말하였다. “사람의 머리는 늙을수록 희어지고 혁명은 늙을수록 붉어진다.”

공산주의에 대한 몽양의 생각이다. 다음은 1931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진술한 것이다.
“맑스의 이론에는 찬성하나 그대로 실행은 불가능하다. 조선 같은 데는 노동독재를 실행하여서는 아니된다. 맑스주의는 소련에서는 레닌주의가 되고 중국에서는 삼민주의가 되었으니 조선에서는 두 나라와 달리 하여야 한다.

모택동·레닌·트로츠키와 회담
이상으로 공산주의를 찬성한다. 실행문제에 있어서는 조선엔 그대로 가져올 수 없다. 세계 각국 어디서든지 맑스주의는 그 형태를 변화시켜서 실행되고 있다. 소련까지도 신경제정책이니 5개년계획이니 하며 시대와 처소에 적응시켜 고쳐가며 실행한다.

조선 해방에는 시종일관 조선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나아갈 심산이다. 전체가 공산주의를 해야만 되게 되면 곧 공산주의를 실행할 것이요, 수정하여야 될 것이면 곧 수정하여 실행할 뿐이다. 결코 언제든지 일부 소수인을 위하는 운동자는 되지 않을 것이며 조선이 독립되면 나라 일을 민중 전체의 의사대로 해나갈 터이다.”

박헌영이 국호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하자고 할 때 ‘인민’이란 말이 너무 과격하니 그냥 ‘조선민주주의공화국’으로 하자던 몽양이었다. 무정(武亭) 장군이 한 말이 있다.

“선생이 국내에서 혁명운동을 하기 위하여는 회색도 좋고 흑색도 좋다. 우리는 신뢰한다. 선생이 만일 혁명을 하다가 죽는다면 조선이 독립한 후 내가 귀국하여 시체라도 지고 삼천리 강산을 돌아다니며 선전하겠노라.”

1945년 12월 ‘선구회’라는 우익단체에서 한 여론조사가 있다. 조선의 지도자를 묻는 질문에 여운형 33%, 이승만 21%, 김구 18%, 박헌영 16%, 이관술 12%, 김일성 9%의 응답이 나왔다. 또 조선 혁명가를 꼽는 항목에는 여운형 195표, 이승만 176표, 박헌영 168표, 김구 156표, 김일성 72표가 나왔다.

몽양이 쓰러졌을 때, 수십만 인민들은 땅을 치며 울부짖었다.
“왜놈도 못했거늘 어째 선생을 죽였느냐?”
“선생의 피와 함께 인민은 살아 있다!!”
“아! 우리의 지도자 몽양 선생. 위대한 지도자, 인민의 벗. 혁명에 흘리신 거룩한 피는 여기 인민의 가슴에 뭉쳐 있나니… 반동의 총탄에 쓰러진 몽양 여운형 선생의 위대한 죽음을 슬퍼하는 이 노래! 몽양의 유해를 둘러싸고 젊은 청년들이 흐느껴 운다. 고히 잠드시라. 우리의 몽양 선생. 우리는 기어코 원수 갚으오리다. 몽양 선생 추모의 노래는 오고가는 사람을 슬프게 한다.”

<김성동>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_id=18491#csidxc9df5ac9233b7afa6ca3fd64958dd5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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