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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08. 좌우를 넘어 민족을 하나로 '몽양 여운형 선생'
작성자 몽양사랑지기
작성일자 2020-11-06


08. 좌우를 넘어 민족을 하나로 '몽양 여운형 선생'


 
세나토리움 추천 0 조회 90 08.07.23 00:3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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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동아일보기사, 조선일보기사

-소련이 신탁통치주장 - 소련의 구실은 38선 분할점령, 미국은 즉시독립주장

-당시 기사는 워싱턴발 합동통신을 출처로 했다.

*영문명: KPP (korean pacific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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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욱교수는 합동통신의 영문명인 KPP를 추적했다.

그러나 조사결과 미국의 언론에는 보도된 적이 없는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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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 성조기]는 ‘번즈 국무장관이 소련의 신탁통치에 반대하고 조선의 측시독립을 촉구하는 훈령을가지고 갔다’고 보도했고 합동통신(KPP)은 ‘미국은 즉각적인 조선의 독립을 원하지만 러시아는 신탁통치를 주장한다’ 는 기사를 배포

(출처: 정계동향 (미군정 공보부발령) 45년 12월 29일)

 

-대신 그가 찾아낸 것은 미군정이 자체 진상조사를 통해 작성한 보고서, 보고서는 국내보도의 출처로 태평양 성조기지를 지목하고 있다.

 

-미국은 신탁통치에 반대 미국은 즉시독립을 주장했다는 보고의 출처는 바로 이 신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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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성조기]지 1945년 12월 27일자

태평양 성조기지는 당시 일본에 주둔중인 미군을 위한 신문이었다.

해당기사를 확인해본 결과

 

 

-기사 내용은 소련의 신탁주장에 반대해 미국은 즉시독립을 주장했다는 부분이 일치하고 있었다.

It was pointed out that secretary of state James F. Byrnes wen to Russia with instructions to urge immediate independence of korea as opposed to the Soviet thesis of trus-teeship.

Up said. The American ...

...번즈 국무장관이 소련의 신탁통치에 반대하여 조선의 즉시 독립을 촉구하는 훈령을 가지고 러시아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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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상황도 혼란을 더해갔다.

처음 반탁을 지지한 박헌영이 북에 다녀온 뒤, 모스크바결의안 지지로 선회하면서 시위는 반소. 반공운동으로 변질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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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형(88) / 시인

찬탁 반탁에서 완전히 갈라져 버렸어.

찬탁 반탁에서 그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도 그렇게까지 대립 안했는데 찬탁, 반탁이 나면서 빨갱이냐 아니냐 하는게 더 선명하게 나왔다고.

찬탁한 사람은 빨갱이다.

반탁한 사람은 애국자다.

 

-이 혼란속에서 여운형은 즉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어느때보다 정확한 상황파악이 필요했다.

대신 해가 바뀌자 여운형의 인민당을 중심으로 4당 지도자와 임정이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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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당 (한민당, 국민당, 조선공산당, 조선인민당) 코뮤니케

1.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이 조선의 자주독립을 보장하는데 대하여 전적으로 지지한다.

2. 신탁은 장래 수립될 우리 정부로 하여금 해결하게 한다.

-1946년 1월 8일

 

-여기서 조선의 자주독립을 보장하는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신탁은 장래수립될 우리정부가 해결케 하자는 합의가 이루어진다.

이것은 해방이후 각 정치세력이 이루어낸 단 한번의 합의안이었다.

그러나 약속은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사태는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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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남헌 / 독립운동가

그것만 합의가 이루어졌더라도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실패도 안했을거고

또 오늘날과 같이 남북이 갈라지지 않고 통일정부가 수립되었을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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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모습을 보며 여운형은 이렇게 통탄했다.

“참담한 심경이다.

나를 비롯해 지도층을 자칭하는 이들이

총 퇴각을 할 때라 생각한다.

우리같은 지도층이 없었던들 통일은 벌써 성공했을 것이다.

조선 지도자들은 제1차 시험에서 전부 낙제다.”

(4당 코뮤니케 무산뒤 1월 14일 기자회견)

 

-여운형의 비통함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한반도의 남과북에서는 분단의 그립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최근에야 비밀해제된 미.소 양국의 비밀문서들은 그 위기의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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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던이 미 국무장관에게 1945년 11월 20일

740,00119 control (korea) / 11-2145 : telegram

The Acting Political Adviser in korea. (Langdon)

to the Secretary of state 44

 

[Seoul, 20 November, 1945]

[Received November 21-4 : 25 p.m]

Tfgbi 20. Referance SWNCC 79/1 and 101/4 of October 20 and 24 Respectively.

After one month's observation in liberated korea and with background of earlier service in korea, I am unable to fit trusteeship to actual conditions here or to be persuaded of its suitability from ...중략

 

[“Transmitted also to the Actiong Political Adviser in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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