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rnal Youngman Mongyang
Revolutionaries of freedom and independence
National leaders ahead of the times

몽양 자료실 > 글과 논문

글과 논문

제목 여운형의 진보적 민주주의
작성자 몽양사랑지기
작성일자 2020-10-26


                                여운형의 진보적 민주주의



1945년 8월 들어 조선총독부는 재조선 일본인의 신변보호를 위해 유력한 조선정치인들과 협상을 전개했는데, 우익인사 송진우 등이 이를 거절했다. 다급해진 일제는 15일 아침 엔도 정무총감을 보내 여운형에게 치안유지에 관한 협력을 요청했다.


이미 건국동맹을 구성하여 해방을 준비하던 여운형은 5가지 조건을 제시하면서 이를 수락했다. 이에 여운형은 좌우의 다양한 세력을 모아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다만 송진우 세력은 상해 임시정부를 명분으로 이에 대한 참가를 거부했다. 건준의 선언문에서 진보적 민주주의가 등장한다.


건준은 스스로를 우리 민족의 진정한 민주주의적 정권을 조직하기 위한 국가건설기관으로 규정하고 건준은 모든 진보적 민주주의적 세력이 집결하여 조선의 치안을 자주적으로 유지하며, 조선의 완전한 독립국가를 실현하기 위한 과도적 정권임을 선언한다.


건준은 이후 조선인민공화국으로 발전한다. 9월 6일 여운형은 전국인민대표자회의 임시의장을 맡아 조선인민공화국 조직법안을 선출하는 등 조선인민공화국의 수립을 박헌영, 허헌 등과 함께 주도했다.


조선인민공화국의 선언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명시하지 않았지만, 외래세력과 반민주주의적인 반동적 모든 세력에 대한 철저한 투쟁을 통하여 완전한 독립국가를 건설하여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를 실현할 것을 건국의 이념으로 내세웠다.


여기서 해방 전후에 중도진영부터 좌파진영까지 폭넓게 인용한 진정한 민주주의 혹은 진보적 민주주의에 대한 관계를 살펴봐야 한다. 해방 전후 모든 정치세력들은 민주주의를 건국이념으로 주장하며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진정한 민주주의 혹은 진보적 민주주의라고 표방했다.


이들은 다른 정치세력들이 주장하는 진보적 민주주의와 구별하여 자신들이 진정한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해방공간에서 진보적 민주주의 혹은 진정한 민주주의는 어떤 특정세력의 민주주의가 아니었으며, 공통적인 개념은 반봉건, 반파쇼, 정치적 기본권보장, 자본주의 모순 비판 등이었다.


다만 자본주의 모순 비판에 있어서는 박헌영의 자본주의 부정과 사회주의 지향에서부터 자본주의를 인정하되 그 폐해를 극복하자는 주장까지 다양하게 분포했다. 여운형은 과거 공산주의 운동에 참여했으나 해방직후에는 공산당과 일정부분 거리를 유지하면서 근로인민당을 창당했으며, 자본주의 극복을 목표로 삼았지만 조선공산당에 비해 사회주의적 지향이 뚜렷하지 않았다.


남한을 점령한 미군은 1945년 10월 조선인민공화국을 불법화했다. 한편 좌우대결의 해방정국에서 온건한 사회주의자로서 민족의 통합을 주장했던 여운형의 입장에서 조선인민공화국은 점차 조선공산당에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이에 여운형은 45년 11월 12일 건국동맹, 인민동지회 등 온건한 사회주의자들을 규합하여 근로인민당을 창당했다.


근로인민당은 근로대중을 중심으로 한 전 인민의 완전한 해방을 기본이념으로 하면서 조선의 완전독립과 민주주의 실현을 현실적인 과제로 제시했다. 여운형은 인민당의 신념이라는 연설을 통해 인민당을 진보적 민주주의 대중정당으로 규정하는 등 진보적 민주주의를 당의 강령 차원에서 수용했다. 인민당의 강령을 보면 진정한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등 <진정한>과 <진보적>인 것은 서로 대체할 수 있는 의미로 사용됐다.


45년 말과 46년에 걸쳐 미소의 긴장이 격화되고, 미군이 좌익을 탄압했으며, 북에서는 북조선노동당이 창당됐다. 이후 인민당은 미군정의 탄압에 좌익들이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공산당, 신민당과의 합당논의에 들어갔다. 그러나  미군의 좌익탄압과 박헌영의 월북으로 합당과정은 일대 혼란에 휩싸이며 여운형은 근로인민당은 사회노동당, 인민당의 복원 등으로 이어진다. 여운형이 미소공동위원회와 협조하면서 조선의 독립을 도모하던 중 47년 7월 암살을 당하자, 인민당은 점차 와해됐으며, 그와 함께 여운형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현실 정치에서 실현되지 못했다.


여운형의 진보적 민주주의가 비록 역사적으로 좌절됐지만, 오늘날 이남의  진보적 대중정당의 입장에서 보면 박헌영이나 김일성 주석의 진보적 민주주의에 비해 더 많은 실천적인 시사점이 있다.


첫째, 여운형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박헌영의 진보적 민주주의에 비해 민족자주의 입장을 강조했다. 이점은 자주를 전면에 내세웠던 김일성 주석의 진보적 민주주의와 일맥상통하는 점이다. 박헌영은 해방직후 조선의 완전독립에 있어 미국과 소련의 영향을 과도하게 평가했다. 이에 비해 여운형은 해방 전에 건국동맹을 주도하는 등 다양한 민족구성원들을 규합하여 자주적인 건국을 준비했다. 여운형은 박헌영이나 김일성 주석과 달리 미소의 일방에 치우치지 않고 이들을 조선으로부터 하루빨리 철수하도록 하는 것을 당면의 목표로 삼았다. 여운형은 미소의 조선반도에 대한 지배력을 인정하는 현실에서 신탁통치를 사실상 찬성했지만 신탁통치라는 용어에 반대하면서 국제정치의 현실을 수용한 단계적 국가건설을 주장했다.


둘째, 여운형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중도보수진영에 비해 경제적 평등을 강조하는 한편, 궁극적으로 사회주의를 지향하되 점진적인 방안을 채택하여 민생안정과 민족의 단결을 유지하고자 했다. 여운형의 사회주의적 단계적 지향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부르조아민주주의혁명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잘 나타난다. 여기서 부르조아민주주의혁명은 2단계사회주의 혁명론으로서 서구의 시민혁명을 의미하는 부르조아혁명과 본질적으로 다른 의미이다. 여운형은 일본제국주의자와 친일세력의 토지를 무상몰수하고 중요기관의 국유화에 찬성했지만, 박헌영과 같이 대지주에 대한 무상몰수와 농민에 대한 무상분배와 같은 급진적인 정책에 대해서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셋째, 여운형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박헌영의 진보적 민주주의에 비해 좀 더 폭넓은 연대연합을 강조한다. 친일세력과 반민족세력, 반민주파쇼세력을 제외한 전 민족의 단결을 강조했다. 또한 박헌영은 노동자 농민의 지도중심성을 다소 절대화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여운형은 노동자와 농민의 지도중심성을 인정하되 박헌영보다 좀 더 넓은 계층의 단결을 주장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근로대중을 포괄하고자 했던 여운형의 노력은 근로인민당이라는 당명에서도 확인된다. 여운형은 건국동맹과 건준을 발족시키면서 송진우와 같은 중간세력까지 포괄하고자 노력했다.


넷째, 오늘날 이남의 진보적 대중정당에도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주의에 대한 유연한 입장을 견지했다. 일단 여운형은 사회주의 자체를 절대화하기보다는 민족해방과 독립국가 건설의 관점에서 받아들였다. 사회주의자였지만 사회주의를 교조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사회주의 실현경로에 있어 다양한 가능성을 인정했다. 여운형은 서구유럽의 사례를 지적하며 의회민주주의를 통한 사회주의 실현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사회주의에 대한 이러한 유연성이 소련의 지원아래 인민민주주의 정권을 거쳐 사회주의로 나아갔던 김일성 주석의 경우보다 오늘날의 이남에 더 많은 시사점을 준다. 오늘날의 이남은 미국의 지배와 좌우의 대립이라는 객관적 조건으로 인해 사회주의로 향한 단선적 발전이 실현되기 어렵기 때문에 사회주의에 대한 폭넓은 관점과 유연한 전술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 민주노동당 안산시위원회 위원장




항목선택
첨부파일

카테고리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자 첨부파일
34 03. 좌우를 넘어 민족을 하나로 '몽양 여운형 선생' 몽양사랑지기 2020-11-03
33 02. 좌우를넘어 민족을 하나로 '몽양 여운형 선생' 몽양사랑지기 2020-11-03
32 01. 좌우를 넘어 민족을 하나로 '몽양 여운형 선생' 몽양사랑지기 2020-11-03
31 여운형의 진보적 민주주의 몽양사랑지기 2020-10-26
30 21세기 아시아의 거목, 몽양 여운형 / 홍기빈 몽양사랑지기 2020-10-16
29 '巨星의 光輝'(거성의 광휘) / 이기형 몽양사랑지기 2020-07-23
28 북행길에 뿌린 민족주의자의 염원 / 정병준 몽양사랑지기 2020-07-16
27 金午星,『指導者群像』여운형론 몽양사랑지기 2020-06-24
26 소위 여운형 사건에 관해서 / 요시노 몽양사랑지기 2020-06-19
25 몽양 여운형에의 회상 / 이기형 몽양사랑지기 2020-06-19
  1   2   3   4   5   6   7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