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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손치웅 선생의 몽양 여운형 회고담- 3) 조만식 선생에게 전한 밀서에 대하여
작성자 몽양사랑지기
작성일자 2021-08-08




손치웅 선생의 몽양 여운형 회고담 - 3


3) 조만식 선생에게 전한 밀서에 대하여


--몽양 선생이 평양의 조만식 선생에게 보내는 밀서를 전달하셨다면서요?
답) 그렇습니다. 1945년 8월하순경 몽양 선생은 저를 은밀히 불러 밀서 한 장을 주시며 이것을 평양의 조만식 선생에게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38선을 넘으셨습니까?
답) 저는 일단 개성 쪽으로 갔으나 소련군이 올라가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갈 방법이 없어 다시 돌아서려는데 가슴 속에 숨겨진 몽양 선생의 밀서에 생각이 미치는 거에요. 그래서 해주 쪽으로 겨우 건너가서 밤낮으로 걸어 일주일만인가에 평양에 도착했습니다. 평양에 도착해서 몸을 보니 온몸이 가시덤불에 찢기고 베어져 있더군요. 지난번 평양공전에 입학했을 때 얻어둔 하숙집을 찾았더니 하룻밤을 그냥 재워주더군요. 온몸이 녹초였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저는 조만식 선생을 찾아갔습니다.

--당시 조만식 선생은 연금상태에 있으셨나요?
답) 아닙니다. 당시 조만식 선생이 계신 곳은 목조 2층건물이었는데, 무슨 인민위원회 간판이 걸려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제가 몽양선생이 보내서 왔다고 했더니 조만식 선생은 주위를 물리쳤습니다. 두 사람만이 남게 되자 조만식 선생은 밀서를 읽어보시더니, “형님은 나더러 서울로 오라 하지만, 내가 가면 이곳의 기독교인들과 동포는 어찌 한단 말이오?”하면서 내 손을 꼭 잡고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이로 보면 몽양 선생은 밀서를 통해 조만식 선생을 서울로 오시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조만식 선생이 몽양 선생 보다는 연세가 위이지 않습니까?
답)나도 그런 줄 아는데, 웬일로 조만식 선생은 당시 몽양 선생을 ‘형님’이라고 하시더라구요. 당시도 이상히 생각했던 것으로 미루어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몇 분 동안이나 같이 있으셨습니까?
답) 다 합해도 30분이 채 안될 것입니다. 아무튼 몽양의 밀서 내용이 조만식 선생을 모셔오라는 것이고, 조만식 선생은 올 수 없다는 답을 분명히 하셨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평양에 지체할 수 없어 다시 걸어서 남하를 했습니다.

--언제 서울로 돌아오셨습니까?
답) 9월8일 미군의 서울 진주가 있었는데, 그 이틀 전이었으니까 9월6일경입니다. 집에 돌아와서 아주 뻗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평양에 갔다 온 사실을 몽양 선생에게 보고했더니, 내가 몽양의 밀사로 평양을 다녀왔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사실 나는 죽을 고생을 하면서 밀서를 전하고 온 것뿐인데, 내가 무슨 큰 영광이나 누린 것 같이 대하는 주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당시 조만식 선생이 서울로 오셨더라면 좋았을 것 같군요.
답) 그렇지요. 그후 조만식 선생은 소련군에 의해 납치되어 행방불명되었는데, 당시 남하했다면 그런 일도 없었겠지요. 조만식 선생은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한 우파 인사들에게 영향력이 큰 인물이었으므로, 당시 남하하셨다면 좌우합작을 중시하던 몽양 선생의 입지를 크게 도울 수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또 역사가 전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몽양사랑지기 주 :

고당 조만식 선생님의 최후의 사진



손치웅 선생님이 몽양 선생님의 밀사로 평양으로 조만식 선생님을 만나러 갔을 때, 손수 찍어오신 조만식 선생님의 모습입니다.
그날 찍으신 사진들은 당수(작고)에게 모두 1965년에 건네졌고, 그 중 1장이 1966년에 발간된 책 "고당 조만식"에 게재되었습니다.
또 1995년에 '고당 조만식 선생 기념사업회'에서 펴낸 "고당 조만식 회상록"에
"1945년 9월 평남 인민정치위원회 위원장 시절의 조만식.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던 이 사진이 조만식의 최후의 사진이다"란 설명과 함께 게재되었습니다.(아드님이신 손성훈님 증언) 나머지는 모두 분실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머리에 감으신 붕대는 '괴한에게 맞아서' 라고 알려져있으나 실상은 머리에 종기가 나셔서 붕대를 두르고 계셨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조만식 선생님 초상화 앞에서

손치웅 선생님께서 찍은 사진으로 그려진 초상화 앞에서.
- 1999년 7월 8일 촬영. 고당 기념사업회 안에서


그리고 밀사로 가신 일을, 2007년 7월 20일 몽양 선생님 60주기를 맞이하며 <몽양의 밀사> 라는 책으로 집필을 시작하셔서 책으로 나왔습니다. 다음에 따로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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