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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여운형의 암살 / 정경모 저 <찢겨진 산하> 중에서
작성자 몽양사랑지기
작성일자 2021-09-03


여운형의 암살

 

 

여운형 : 마침내 7월 19일인데, 이 날의 암살극을 조종한 사람은 조병옥과 장택상입니다. 여기서 잠깐 흥미로운 일화를 하나 소개하지요.
미소공동위가 재개되고, 이에 호응하는 합작위의 일이 착착 성과를 올리고 있던 무렵 - 아마도 7월 상순이었을 것입니다 - 장택상이 여봐란 듯이 백차 경호를 받으면서 경찰청 전용차로 모 미국인 고문의 사저를 방문해 이승만의 정치가로서의 결함을 마구 주워섬기고 나서는 이승만은 이제 앞이 뻔하니 - 즉, Ree is finished - 더 이상 여운형과 김규식의 합작운동을 방해하는 일은 안하겠다고 공언했다는 거예요. 이것은 장택상 특유의 교활한 양동작전이지요. 이미 그 시점에서 암살계획은 세워져 있었고 어차피 여운형은 죽을 테지만 자신이 의심을 받아서는 곤란하니까 그것을 피하려는 사전공작이었습니다.
얘기를  7월 19일로 돌립니다.

그날 오후 1시가 지나 내가 탄 차(뷰익 30년형)가 혜화동 로터리에 다다르자 그때까지 근처 파출소 앞에 세워져 있던 대형 트럭이 갑자기 튀어나아 앞을 가로막는 것이었어요. 내 차가 급정거를 한 순간 어떤 괴한 한 놈이 뒷범퍼에 올라타더니 권총을 세발 쏘아댔습니다. 저는 즉사했지요.
동승하고 있던 내 경호원이 재빠르게 도망치는 범인을 쫓아가 막다른 골목에서 담을 넘어 옆집으로 뛰어내린 범인을 보고 담을 넘으려고 하자. 그 순간 뒤에서 쫓아온 자가 내 경호원(박성복)의 발을 붙잡아 범인이 도망가게 도운 그 놈은 제복을 입은 경찰관이었습니다.
도리어 경호원이 경찰관에게 체포되어 성북서 유치장에 갇혔다니 더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사건 후 120시간이 지나서 겨우 경찰은 한지근이라는 19세 소년을 범인으로 체포했다고 발표했는데, 체포되어 법정에 선 것은 그 한사람이었어요. 단독범이란 것이지요. 재판 때 파출소앞에 세워 둔 트럭이 갑자기 튀어나와 내 차를 급정거시킨 사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고요. 피고는 달리는 차를 뒤쫓으면서 권총을 쏘았다고 거짓말을 하고 검찰측이 내 세운 증인들도 모두 피고의 진술을 그대로 긍정했습니다. 위증이지요. 현장을 실제로 목격한 시민 중에서 증인으로 채택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요.

결론을 말하자면 범행현장에는 범인인 제 1 저격수 한지근 말고도 제 2 저격수 겸 현장 지휘자 하나, 도피 확인자 둘, 합계 네 명의 공범이 있었는데, 경찰은  이 점에 관해서 아무것도 밝히지 않았습니다.
'19세 소년 한지근' 이라는 경찰의 발표도 새빨간 거짓말이고, 범인의 나이는 스물하나, 본명은 이필형입니다. 범인들이 가지고 있던 세 자루 권총은 장택상이 지급한 것이고, 실제로 범인들에게 이것을 건네 준 사람은 아까 말한 김두한입니다.
범인 이필형은 좌익 세력의 제거를 위해 권력의 비호 아래 조직된 테러단 '백의사'의 일원이고 . 이 백의사를 윤치영. 장택상. 조병옥 그리고 이승만으로 연결하는 중간책이 김두한이었습니다.
'백의사'에 대한 경찰의 지원을 직접 담당한 놈은 언제나는 체계적으로 기술될 '한국의 국가 범죄사'에서 특이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노덕술(수도경찰청 수사과장)입니다. 정부수립 후 '반민특위(반민족행위 특별위원회)'가 일제 시대 때에 특별고등 경찰이었고 해방후에도 사람을 잡아서는 고문으로 죽이고 그 시체를 얼어붙은 한강 얼음 밑으로 밀어넣는 등 악랄한 짓을 한 노덕술을 체포하려 했을 때 이승만이 기를 쓰고 그를 감싼 것은 7월 19일 나의 암살극에 얽힌 더러운 인연 탓이었다고 보아도 틀림없을 겁니다.
범인은 일단 사형선고를 받고 곧 무기로 감형이 됩니다. 그 후 경찰은 6.25동란 때 범인이 개성 소년형무소에서 인민군에게 사살되었다고 발표했는데, 이것도 거짓말입니다. 그 일당의 두목이 한흥지라는 가명으로 버젓이 도쿄에서 살고 있는데, 권력의 비호를 받고 있던 한지근이 형무소에 갇힌 채 인민군에게 사살되었다는 걸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7월 19일 나를 죽인 조병옥, 장택상 일당은 해방 직후 한반도에 상륙한 미군에게 여운형은 소련의 조종을 받는 빨갱이라느니 총독부에서 돈을 받은 일제의 주구라느니 하는 중상모략으로 '인민공화국'을 소멸시킴으로서 나를 정치적으로 매장한 인물들입니다. 그들은 나를 두 번 죽인 셈이지요.
이윽고 그들은 '유일한 정통 정부로서 추대한다'고 주장해 마지 않던 백범 선생의 임시정부를 배신하고 미 군정청에 붙어 이번에는 백범 선생을 시해함으로서 최종적으로는 임정마저도 타도하는 더러운 짓을 저지르게 됩니다.
아무튼 제가 제거된 후 좌우합작위는  10월 6일 해산되고, 이로써 할 일을 잃어버린 꼴이 된 제 2차 미소공동위도 10월 18일에 중단했으며. 이어서 10월 24일 유엔 총회 정치위에서 유엔 임시조선위의 설치를 요구하는 미국안이 소련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결되기에 이르렀지요. 이리하여 이승만이 쾌재를 부르는 가운데 역사는 남쪽만의 단독선거를 향해 질주하게 됩니다.

 


(이 글은 한겨레출판사에서 출간된, 정경모 저, 여운형 김구 장준하 선생님 세분의 구름위의 정담인
"찢겨진 산하 '에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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