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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손치웅 선생의 몽양 여운형 회고담 - 4)한국독립운동기념관의 설립에 대하여
작성자 몽양사랑지기
작성일자 2021-08-08


손치웅 선생의 몽양 여운형 회고담 - 4


4. 한국독립운동기념관의 설립에 대하여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
답) 나는 해방당시나 지금이나 정치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내가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은 과학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서 생각해볼수록 몽양 선생은 큰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자료를 중심으로 하여 호주 시드니에 <한국독립운동기념관>을 세울 계획입니다.

--<여운형 선생기념관>이 아니라 <한국독립운동기념관>이군요?
답) 그렇습니다. 여운형 선생을 중심으로 한 기념관입니다. 한국에서는 몽양 선생을 잘 모르는 분이 많은데, 지난번 일본 NHK에서 몽양선생 특집을 만들 때 이를 취재 나온 일본 기자들이 그래요.
만일 해방 당시에 몽양이 건준을 만들고, 전국에 건준 치안대를 조직하여 해방직후의 혼란기를 수습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했겠느냐는 겁니다. 이 점에서 여운형 선생을 좌우라는 이념의 잣대로 보는 단순시각은 마땅치 않다는 겁니다.
해방 당초부터 몽양 선생은 정적들로부터 친일파다, 빨갱이다 하는 누명을 들어왔지만, 과연 몽양 선생만큼 항일 운동을 한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분을 친일파로 몹니까? 좌파의 테러를 수도 없이 당하면서 우파를 감싸 안으려고 했던, 그래서 조만식 선생에게 밀서까지 보내며 민족을 통합시키고자 했던 그분을 무조건 빨갱이로 몹니까?
나는 마음 한 구석에 한국의 이런 점이 싫어서 30여년전 호주로 이민을 갔던 것이 아닐까 하고 지금 깨닫고 있습니다. 민족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몽양 선생을 친일파나 빨갱이로 몰다니요? 나는 1947년 7월19일 몽양 선생이 암살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울대학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가서 보니, 몽양 선생은 미소를 띈 환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습니다. 도무지 죽은 것 같지 않았습니다.
평화와 휴매니즘,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그것이 몽양 선생의 정신이 아니었을까요? 세월이 지날수록 몽양 선생은 큰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날로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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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서 손치웅 선생님의 몽양 회고담은 끝나고... 남겨진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특히 4항의 증언 중, 특히 8.15를 맞으며 일본 NHK 몽양선생 특집을 만들 때 손선생님은 호주에서 건너오셔서 일본 NHK와 인터뷰하셨는데 그 내용들이 다큐멘터리 속에 담겨있습니다. 8.15를 전후하여 활약하신 몽양 선생님 활동이 담긴 다큐멘터리입니다. 서훈 운동을 할 당시 추모사업회의 홈페이지 '몽양사랑'의 지킴이(몽양사랑지기)였던 제가 도움되는 자료들을 제공했고 또 필요한 곳에는 동행했기 때문에 충분히 객관적 증언자의 역할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손선생님은 후에 실행된 <한국독립기념관>의 사진들을 보내주셨지요.
(다음에 보여드리기로 합니다.)

일본 NHK의 ‘<8·15, 그날 세계는 무엇을 향하고 있었나’>라는 다큐멘터리 방송 후 선생님께서 제게 주신 편지들에는 그 당시 적국인 일본에서도 이렇게 몽양 선생님의 독립운동활동과 정신에 대해 이렇게 방송으로 내 보내고 있는데 정작 모국인 한국에서의 몽양 선생님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셨습니다.그리고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라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다행히 그 내용을 빼곡하게 담은 두 장의 긴 서신도 제가 가지고 있어서 담아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들을 몇 개월 전에 젊은 시절부터 몽양 여운형을 좋아해서 연구하신 사학계의 '몽양통'이라 불리우시는 정병준 교수님에게 알려드렸습니다.

그 당시 경기고보의 학생으로서 뛰어난 머리와 손재주를 활용하여 몽양 선생님으로 하여 단파 방송을 청취 가능하게 함으로서 일본과 세계정세를 읽게 하신 손선생님의 수고는 실로 소중하고 큰 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손선생님이 보내오신 방영된 테이프

NHk 제작진이 취재에 도움을 주었다고 선물로 준 CD입니다
그 당시 손선생님이 독일 라이카 카메라를 가지고 계셨는데 군정당시 윈본필름도 제게 보내주셨는데 모든 권한은 제 판단에 맡기셨습니다. 그 시절에 손선생님의 부친께서 사진관을 하고 계셔서 손선생님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계셨던 것도 다행이고 좋은 일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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