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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지막회. 좌우를 넘어 민족을 하나로 '몽양 여운형 선생'
작성자 몽양사랑지기
작성일자 2020-11-06




마지막회. 좌우를 넘어 민족을 하나로 '몽양 여운형 선생'

세나토리움추천 0조회 10208.07.23 01:59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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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선생 장례식 (1947. 8.3)

여운형의 죽음으로 좌우합작은 사실상 멈춰버렸고

그해말 결국 해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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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원했던 통일의 꿈도 역사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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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의 시신은 포르말린으로 처리돼 철제관에 담겼다.

통일된 조국에 다시 묻어달라는 당부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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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양은 개인적으로 소련보다 미국에 더 가까웠지만 이들 양국에 대해 절대 중립이었으며 그가 갖고 있던 유일한 목적은 미.소 양국으로 하여금 가급적 빨리 한국으로부터 물러나게 하는 일이었다.”

-주한미국총영사 윌리엄 랭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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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배반] 초고 -리처드 로빈슨

로빈슨은 자신이 본 해방당시 한국의 상황을 책으로 엮어 여운형에게 바쳤다.

‘미국의 분별없는 외교정책에 의한 희생자 여운형에게 이 책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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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좌익과, 우익 양쪽의 전체주의와 기회주의에 대항하여 싸웠다.

그리고 그는 그 이유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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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공산주의자라는 생각은 틀린 생각이다.

그는 최대한 공산주의를 이용했을 뿐이다.

그는 민중정치기구결성을 도왔지만

그는 결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는 공산주의 이론을 신봉하지 않았고 소련편이 아니었다.

그는 한국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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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소련 그리고 좌와우

남과 북이라는 대립속에

그가 원한 것은 권력이 아닌 하나된 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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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된지 60년 그가 떠난지 58년

아직도 여운형은 차가운 역사속에 그렇게 갇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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