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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06. 좌우를 넘어 민족을 하나로 '몽양 여운형 선생'
작성자 몽양사랑지기
작성일자 2020-11-06




06. 좌우를 넘어 민족을 하나로 '몽양 여운형 선생'


세나토리움 추천 0 조회 77 08.07.22 23:5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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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직후인 45년 10월

우익잡지인 선구가 최초의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조선을 이끌 지도자 여운형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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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가장 어려운 시기 이땅에서 민족과 함께 해방을 준비한 여운형에 대한 굳은 신뢰였다.

그러나 광복 60년 여운형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새나라 건설을 꿈꾼 건국준비위원회와 여운형 그들에게 무슨일이 일어났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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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시애틀

이곳에서 대한민국의 60년전의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는 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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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로빈슨)

그는 45년 9월 일제에 대한 승전국으로 미군이 조선에 진주할 당시 미군정의 군정관이었다.

조선에 도착한 직후 그가 직접그린 지도위를 빽빽하게 차지하고 있는 것이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다.

건준조직은 당시 인민위원회로 전환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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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로빈슨 / 당시 미국 군정관>

“우리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이 지도에서도 보듯이 전국에서 이 위원회가 활동중이었고 수백개의 지부가 있었다.

일본인은 여운형에게 항복했다.

당시 다른 사람은 없었고 그에게 권력을 넘겨주고자 했다.

그래서 이 위원회가 설립돼 전국에서 지방정부 역할을 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들은 얘기는 ‘이 위원회는 공산주의 조직망이며 따라서 파괴되어야 한다는 것’ 이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

우리는 이 위원회들을 제거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실수였다.

이들은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것은 건국을 향한 조선백성들의 노력이 무너지는 과정이었다.

미군을 환영하기 위해 장흥까지 나갔던 장흥치안대도 예상치 못한일을 당했다.

 

강수의 (89) / 사진작가 (장흥치안대 참여)

(미군정은) 치안대가 경찰서에 들어가서 치안을 맡고 있는걸 전부 쫓아내고 일제 경찰들을 오라고 하여 경찰을 조직해서 치안을 맡도록 했어요.

‘군인민위원회, 청년단, 치안대 이런 사람들이 모두 빨갱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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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9월 미군정은 일제때의 기관과 관리를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원활한 체제유지를 핑계로 그들이 수월하게 다룰 수 있는 것이 그들(친일파)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 조사에 따르면 46년 경위이상의 경찰고위 간부중 80%가 일제경찰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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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 하지(미군정 사령관) 첫 만남 1945년 10월

 

여운형을 둘러싼 상황도 달라져 있었다.

미군정 책임자 하지와 여운형의 첫 대면이 이루어진 것은 미군이 진주한 뒤 한달이 지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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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전 친구에게 전한 편지에서

(김용중에게 보낸 여운형의 유고 편지중)

1947년 7월 18일

여운형은 45년 10월 하지와의 첫 만남을 이렇게 적고 있다.

 

After shaking hands, the first question Gen-aral hodge put to me was, 'What connections have you much the jap?'

Answer : 'None' Then asked : 'How much money did you receive from the jap?'

I was completely taken aback by his question this unfriendly attitude. -중략

(악수를 마친후 그가 던진 첫 질문은 ‘왜놈과 무슨 관련이 있지’ 였고 내 대답은 ‘없소’였소.

그러자 그는 ‘왜놈으로부터 얼마나 돈을 받았지’ 라고 묻더이다.

나는 그의 질문과 비우호적인 태도에 완전히 당황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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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에 대한 하지의 왜곡된 선입견

그 배경은 곧바로 밝혀졌다.

하지와 만난뒤 옆방으로 향하자 그곳은 미군정 고문으로 위촉된 9명의 조선이이 있었다.

바로 한민당원들이였다.

 

*한민당(한국민주당) 발기인 대회 성명서 (1945년 9월 6일)

 

- 미군이 진주하기 직전 출범한 한민당

한민당은 첫 발기인 성명부터 여운형과 건국준비위원회를 ‘일제와 손잡고 무질서를 조장한 소수 무리배’ 라고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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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내용>

‘총독부 정무총감으로부터 치안유지에 대한 협력의 의뢰를 받은 여운형은 4,5명으로서 건준위를 조직하고...’ , 각처에서 폭행이 일어나고 무질서한 상태가 연속되었다...

 

-당 지도부의 90%가 친일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지주와 자본가 출신으로 구성된 한민당은 오히려 여운형이 친일파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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