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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07. 좌우를 넘어 민족을 하나로 '몽양 여운형 선생'
작성자 몽양사랑지기
작성일자 2020-11-06




07. 좌우를 넘어 민족을 하나로 '몽양 여운형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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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들의 날조왜곡기술은 50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들은 미군정에 달라붙어 자신들의 범죄를 가리고 또한번 미군정하에서 다시한번 민족에 씻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다.

 

강원룡 / 목사

친일파라고 한민당에서 하고 했는데...

끝까지 일제때 국내살면서 마지막까지 타협(배교)안한 사람이에요.

여운형하고 안재홍 선생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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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군 및 이승만 환영식 (1945년 10월 20일)

대대적인 환영속에 이승만이 귀국한다.

그는 여운형의 방문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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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11월 23일 김구와 임시정부인사들이 귀국했지만 역시 여운형과 손잡지 않았다.

임시정부의 노고를 잘 아는 여운형이었지만 임시정부만을 추대하자는 주장에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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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준교수 / 목포대 역사문화학과

여운형의 생각은 임시정부라는 조직이 중경, 중국각지에 독립운동했던 여러 중요한 조직들이 해외에 5개 정도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 세력들이 국내에 들어와서 함께 새로운 임시정부를 건설해야 된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은 중경에서 들어온 임시정부 주위에 있던 사람들과 임시정부세력들에게는 중경임시정부권위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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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중앙 대강당 / 서울 종로구 경운동

이미 시작된 대립과 갈등속에 여운형은 조선인민당을 창당한다.

인민위원회와 인민공화국으로 전환한뒤 건국준비위원회가 또다른 분열의 축이 되고 있음을 인정하고 새출발을 선언한 것이다.

평화적 방법으로 광범위한 대중과 정치세력이 뭉쳐 독립을 완성기키는 것, 이것이 인민당의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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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당 창당연설중 / 1945년 11월

독립을 완성하려면 땅의 남북과 사상의 좌우를 가를 필요가 어디 있는가?

과거 지하운동시대 어두컴컴한 감방을 걷다 만나 껴안고 감격했던 혁명투사간에 민족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없었던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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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결을 위한 원칙은 단 하나!

악질적인 친일파의 배제였다.

이것이 여운형이 죽는날까지 외친 원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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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기사의 신탁통치기사 (1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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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45년의 마감을 앞둔 12월 27일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조선의 신탁통치가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날아든다.

35년간의 식민지를 벗어나던 그해 또다시 들려온 신탁통치소식에 반대시위는 급격하게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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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3상회의

그러나 당시 조선문제에 대한 결의 사항이 무엇이었는지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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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항

1. With a view to the re-establishment of korea as an independent state, the creation of conditions for developing the country on democratic principles and the earlist possible liquidation of the disastrous results of the protracted japanese domination in korea, there shall be set up a provisional korean democratic government which shall ...

(조선을 독립국가로 재건설하고 민주주의적 원칙하에 임시조선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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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항

3. The proposals of the joint Commission shall be submitted, following consultation with the provisional korean government for the joint consideration of the governments of the United State,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United kingdom and China far the working out of an agreement concerning a four-power trusteeship of korea for a period of up to five years.

(최고 5년 기한으로 4개국 신탁통치의 협약을 작성하기 위해 조선임시정부와 협의한 후 원조 협력방을 작성 제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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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남헌 / 독립운동가

신탁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해서 한국에 임시정부를 수립하느냐가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사항의 원문이란말이야.

‘어떻게 해서 임시정부를 수립하느냐?’

‘그럼 임시정부가 수립한 후에는 어떻게 해서 연합국이 임시정부를 도와주느냐?’

이런 식으로 나가는데 그건 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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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3상회의 -1945년 12월 16일 ~ 26일

모스크바에서 결의안이 채택된 것은 현지시각 1945년 12월 27일 그로부터 3일 뒤 미군정에 원문이 전달됐을때는 이미 반탁시위가 불붙은 상태였다.

그 촉발제가 된 27일자 국내신문들은 모스크바에서 결의안이 나오지도 않은 시간에 배포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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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욱교수 / 서울대 국사학과

모스크바 3상 회의가 12월 26일날 끝나고 12월 27일날 정오에 전문의 텍스트발표를 했는데 27일 정오같은 경우, 한국으로는 27일 밤시간입니다.

그런데 27일날 모스크바 3상회의에 관한 결정이 국내에서는 전부 보도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죠.

특히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해서요.

그런데 왜 그것이 오보냐 하면?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애초에 미국이 러시아측에 제안했던 내용은 5개년간 신탁통치 그리고 그것을 10년간 연장할 수 있다고까지 애초에 제안이 그랬었거든요.

거기에 대해서 러시아의 애초의 입장은 즉시독립시키자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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